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필리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 이후 첫 금융시장 무기한 휴장에 돌입한 가운데 월가에서도 비명이 쏟아지고 있다.
뉴욕증시가 최근 수 일 사이 두 차례에 걸쳐 1987년 블랙 먼데이 이후 최대 폭락을 연출한 데다 경기 침체와 이른바 기업 이익 절벽이 확실시되자 개장이 두렵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금융시장 패닉에 망연자실한 트레이더 [사진=로이터 뉴스핌] |
여기에 극심한 변동성과 비관론이 맞물리면서 일부에서는 투자자들은 매매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의견을 내놓았고, 필리핀과 같은 극단적인 해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었다.
17일(현지시각) 업계에 따르면 뉴욕증시의 S&P500 지수는 지난달 고점 대비 29.5% 급락했고, 월가의 공포지수로 통하는 CBOE 변동성 지수(VIX)는 80 선을 둟고 올랐다.
미국 투자 매체 CNBC에 따르면 뉴욕증시의 11년 강세장은 주도했던 IT 공룡 역시 된서리를 맞았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모기업 알파벳 등 4종목의 시가총액만 2월 고점 대비 1조3000억달러 증발했다.
기록적인 폭락에도 저가 매수 움직임은 찾기 힘들고, 월가는 비관론에 무게를 싣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포함한 주요 외신 역시 주식시장의 추가 급락을 예고했다.
이와 함께 극심한 변동성이 트레이더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솔스타인 캐피탈의 나딘 터먼 최고경영자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VIX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황은 매매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BMO 캐피탈 마켓 역시 VIX가 80 선을 뚫은 것이 역사상 세 번째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미 투자자들 사이에 신뢰 위기가 고조됐고, 이 경우 금융위기로 이어지게 마련이라는 주장이다. BNP 파리바는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최고 수위에 달했다는 진단을 내렸다.
시장 전문가들은 1분기 미국 경제 성장률을 포함해 굵직한 경제 지표와 기업 실적을 통해 코로나19의 충격이 보다 명료하게 확인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표에서 경기 하강 기류가 드러나면서 주식시장의 패닉 매도가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이다.
WSJ은 이번 주가 폭락이 값싼 유동성에 기댄 장기 강세장 뒤에 찾아왔다는 점에서 과거 2008년과 1929년 약세장과 흡사하다고 진단하고, 과거에 비해 금융시스템이 강화된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직 주가 바닥을 장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월가는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보다 강력한 처방이 절실하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제로금리 정책과 이른바 바주카가 부활했지만 바이러스에 마비된 실물경기를 되살리는 데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JP모간은 "보다 직접적이고, 과감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이 부양에 팔을 걷었지만 아직 전폭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바이러스 진화 없이 백약이 무익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UBS는 바이러스 확산이 멈추지 전까지 어떤 부양책도 경기 한파와 금융시장 패닉을 잠재우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무질서한 주가 급락에 각국 정부가 직접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필리핀은 이날부터 주식과 채권, 외환시장의 무기한 휴장에 돌입했고 호주 금융 당국 역시 트레이더들에게 공격적인 매매를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
영국과 런던의 감독 당국은 금융시장 폐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상황이 악화될 경우 이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지난 1987년 런던증권거래소가 대형 폭풍에 휴장했고, 뉴욕증권거래소 역시 2001년 9/11 테러와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강타했을 때 수 일간 거래를 중단한 바 있다.
higrace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