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진 판사 증인신문…"양승태 때부터 헌재 정보 수집한 것 아냐"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양승태 사법부 당시 벌어진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 피고인 이규진(58·사법연수원 19기) 전 부장판사(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가 "헌법재판소 파견법관은 헌재 내에서 농담삼아 '공식 정보원'으로 불렸다"며 "헌재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는 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72·2기)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3·12기)·고영한(65·11기) 전 대법관들에 대한 59번째 재판을 열고 이 전 부장판사를 증인신문하고 있다.
이날 이 전 부장판사는 당시 대법원이 헌재 견제를 위해 파견 법관을 통해 내부 정보를 수집했다는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제가 헌재에서 파견 근무했던 2001년에도 법원에 자료를 보내준 적이 있고 당시 헌재 연구관들이 농담삼아 파견 법관들을 공식 정보원으로 불렀다"며 "(파견 법관들이 헌재와 대법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 것은) 아주 자주 있는 일이었다"고 증언했다.
이 전 부장판사는 "개인적으로 헌재와 법원 간 권한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했다"면서도 "일부 보고서에 헌재 비판 문구가 있어 검찰이 이를 근거로 대법 위상 제고를 위해 법관을 파견한 거라고 본 것 같지만, 사법부 재판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헌재 자료를 확보하려고 한 것은 양승태 사법부 때 시작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통진당 소송 개입' 의혹을 받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07.23 pangbin@newspim.com |
이와 관련해 2015년부터 3년여간 헌재 파견법관으로 근무한 최희준(48·28기)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증인으로 출석해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들과 오찬자리에서 법원 관련한 민감하고 중요한 정보를 바로 전달해달라는 이 전 부장판사의 지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이 전 부장판사가 "인사평정권자는 법원행정처 차장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발언 때문에 헌재 정보를 이 전 부장판사에게 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많이 느꼈다는 취지다.
그는 "이 전 부장판사가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자료를 요청했는데 계속 달라고 요구하셨고 저도 드리다 보니까 점점 많이 드리게 됐다"며 "파견법관 중 제가 가장 선임이었고 제가 하지 않으면 다른 법관들이 할 수 밖에 없어 한 것이었는데, 상당히 부담이었고 전달을 안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때 거절했으면 어땠을까 후회한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 전 부장판사의 주장은 다르다. 이 전 부장판사는 "그 워딩 그대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재판소원이나 한정위헌 등 사법부와 헌재 간 권한분쟁 관련한 사건에 대해서는 분명히 얘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기강을 잡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인사평정권자 관련 발언도 저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며 "(헌재 파견 때인) 2001~2002년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헌재에 왔을 때 인사권 문제로 헌법연구부장에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어 그 에피소드를 말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좌)·박병대 전 대법관(가운데)·고영한 전 대법관(우) [사진=뉴스핌DB] |
이 전 부장판사에 따르면, 그가 헌재를 방문했을 때 당시 헌재 수석연구관으로부터 파견 법관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를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한 뒤 강 전 차장이 화가 나 오찬 자리에서 기강을 잡게 됐다는 취지다.
또 오찬 이후 최 부장판사 사무실에 가서 헌재에서 심리 중이던 재판소원 사건에 관한 연구관들 토론이나 평의 결과 등 내부 정보를 달라고 요청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저는 아예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 전 부장판사는 "최희준과 공식적으로 오래 본 게 그날이 처음인데 은밀한 얘기를 했다면 그날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이후에도 '헌재 분위기는 어떠냐', '평의 있었다고 하는데 재판관들 분위기는 어떠냐' 이런 식으로 물어봤지 결과가 어땠냐고는 묻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같은 헌재 내부 기밀 등 동향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박병대 당시 행정처장이나 임종헌 전 행정처 기조실장에게 들은 적이 있냐'는 변호인의 질문에도 "그런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당시 처장이나 기조실장이 파견 법관을 정보원처럼 활용해서 내부 정보를 수집하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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