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청법·성폭력처벌법 강화 줄줄이 계류
시민단체, 내달 출범 21대 국회에 관련 법 논의 촉구
[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일명 'n번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가 빠르게 악성 진화하는 것과 달리 관련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잠들어 있다. 20대 국회는 내달 29일 임기가 끝나 관련 법안의 통과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다. 디지털 성범죄 예방 및 처벌 강화를 위해 4·15 총선 이후 구성되는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의 조속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6일 시민단체와 국회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아청법 개정안)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 법률안(성폭력처벌법 개정안) △개인영상정보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개인영상정보보호법) 등 디지털 성범죄 예방 및 처벌 강화와 관련된 법안이 다수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17년 10월 아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배포하거나 소지한 자에 대한 형량을 대폭 강화한다는 게 골자다.
세부적으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배포·제공하거나 상영하는 자에 대한 처벌을 7년 이하 징역에서 10년 이하 징역으로 강화한다. 관련 영상을 소지한 자에 대한 처벌도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상향 조정된다.
n번방 가입자 처벌을 강화할 수 있는 법안이지만 여전히 국회를 맴돌고 있다. 상임위원회인 여성가족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한 상황이다. 이 법이 통과됐다면 n번방 가입자들을 최대 3년까지 감옥에 보낼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산업 카르텔을 구성하는 조각들. zunii@newspim.com 2018.09.17 [사진=김준희 기자] |
n번방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안도 줄줄이 20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7년 9월 유승희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핵심 내용은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서비스 운영자에 대한 의무를 강화하는 것이다.
성범죄 피해자가 온라인 서비스 운영자에게 신고를 하면 즉시 관련 영상을 삭제하고 영상이 유통되지 않도록 반드시 조치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온라인 서비스 운영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처벌을 받을 수 있다.
n번방 사건으로 문제가 된 텔레그램의 경우 피해 여성이 텔레그램에 신고하면 관련 영상이나 사진의 삭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 법안 역시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몰래카메라 예방법으로 꼽히는 개인영상정보보호법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017년 12월 개인영상정보보호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화장실이나 탈의실 등에 영상 촬영기기를 설치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 5000만원을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본인 모르게 영상에 찍혔거나 온라인에 영상이 공개됐을 경우 정당한 이유없이 영상 삭제를 거절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도 법안에 담겼다. 그러나 국회는 이 법안을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문제는 관련 법안을 논의할 20대 국회 임기가 5월 29일로 끝난다는 것이다. 관련 법안을 논의할 시간이 불과 한 달 반도 안 남은 데다, 전날 21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마친 상황이라 20대 국회 임기 내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5월 30일 임기를 시작하는 21대 국회가 디지털 성범죄 예방 및 처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법안 제·개정 및 제정안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은 법안은 국회법에 따라 자동 폐기되기 때문이다.
이미 일각에서 미성년 여성의 성착취 영상을 유통해 재판에 넘겨진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이나 n번방 가입자들이 약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1대 국회 임기 시작과 함께 관련 법안을 처리하려면 국회의원들이 미리 움직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관계자는 "곧 출범할 21대 국회에서 성범죄 예방과 처벌에 대한 법 개정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조주빈 등 n번방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 여성을 보호라는 게 시민 목소리"라고 강조했다.
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