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고지하면 '블랙아웃' 돼도 가입자 보상의무 없어
"제3자 포함된 협의체서 조금씩 양보해야"
[편집자주] CJ ENM의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을 둘러싸고 딜라이브와 갈등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단순 두 사업자 간 아귀다툼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갈등의 배경에는 IPTV 중심의 방송 플랫폼 시장 재편, OTT 부상 등에 따른 방송 플랫폼 시장 다변화 등이 깔려있습니다. '블랙아웃'까지 거론되는 상황에 소비자 피해 우려도 지울 수 없습니다.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은 [콘텐츠戰] 3회 스팟기획을 통해 방송 플랫폼, 콘텐츠 시장의 격변기에 벌어지는 CJ ENM과 딜라이브 갈등의 배경과 소비자 피해 등을 자세히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나은경 김지나 기자 = #김진우씨는 주말 저녁 맥주 한 캔을 들고 TV 앞에 앉았다. 드라마 '삼시세끼'를 본방송으로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원래 tvN이 나오던 채널은 까만 화면만 나오고 있다. 고개를 갸웃대던 그는 그제서야 케이블TV사업자인 딜라이브로부터 1주일 전쯤 문자가 왔던 것을 떠올렸다. 신발장 위엔 딜라이브에서 보낸 우편물도 있었다. 우편물의 "17일부터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인 CJ ENM이 방송송출을 중단해 방송시청이 불가능하다"는 문구를 발견한 그는 주말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생각에 피해보상 방법이 없는지 찾기 시작했다.
위 이야기는 딜라이브와 CJ ENM의 프로그램 사용료 협상이 원만하게 마무리되지 못할 경우를 가정한 가상의 사례다. 하지만 플랫폼사와 콘텐츠사의 갈등이 격화되는 현실에서 언제든 현실화될 수 있는 얘기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사례 속 김 씨는 주말 시간을 피해볼 가능성이 높고, 피해를 호소해도 보상받을 길은 없다.
◆약관에도 방송법에도 '소비자 보호방안' 전무
정부가 중재에 나서면서 실제로 방송송출중단(블랙아웃)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흘러갈 가능성은 낮아졌다. 하지만 딜라이브 등 케이블TV사업자(SO)와 CJ ENM과 같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프로그램 사용료를 둘러싼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어 언제라도 현실화 가능성은 남아있다. 문제는 블랙아웃이 일어나도 사실상 시청자가 보상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만년 을'로 여겨지던 PP가 '갑'인 SO를 상대로 도전장을 던진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1일 딜라이브 약관에 따르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방송송출중단으로 이용약관을 변경하는 경우 채널 및 패키지를 변경할 수 있다. 단, 이 경우 딜라이브는 사전고지 7일을 포함해 총 2주 이상 변경내용을 이용자에게 우편, 이메일, 문자와 같은 방법이나 방송자막으로 고지해야 한다.
PP의 일방적인 방송송출중단으로 채널이 바뀐다고 해도 SO가 사전고지 의무만 준수한다면 이용자가 입은 불편을 보상할 의무는 없는 셈이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현행 방송법은 정당한 사유없이 채널을 변경한 SO를 제재할 수는 있지만 CJ ENM, 즉 PP가 방송송출을 중단했을 때 이를 제재할 수는 없다"며 "당사자인 양사간 계약이 기본적으로 우선시 돼야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제까지의 블랙아웃에서도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의 다툼으로 서비스 이용에 불편함을 겪은 소비자들이 보상받은 사례는 없다. 최초의 블랙아웃 사건이 벌어진 지난 2010년, MBC와 KT스카이라이프가 재송신대가(CPS)로 지금과 유사한 분쟁을 벌였을 때는 실제로 6일 동안 지상파 방송송출이 중단됐다. 하지만 이때도 이용자들과 소비자단체가 케이블TV사업자측에 요구한 블랙아웃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외산 OTT 쏟아지기 전에…"정부·기업·전문가 모여 합의해야"
지금의 상황에서 SO든 PP든 소비자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제도개선이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기본적으로는 SO의 가입자당평균매출액(ARPU·Average Revenue Per Unit)이 낮아 SO가 유의미한 금액을 이용자에게 보상할 가능성이 낮다.
예를 들어 서울시 강남구에서 딜라이브의 'UHD셋탑박스' 상품을 3년 약정으로 계약하면 월 이용료는 3만5200원이다. 딜라이브는 이 상품에서 총 999개의 채널을 제공하는데 이중 CJ ENM 계열 채널이 총 13개로 전체 채널 중 100분의 1을 조금 넘는다.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소비자들이 CJ ENM에 지불하는 비용은 약 458원에 불과한 것이다. 이를 30일로 나눠 일간 사용료를 계산하면 15원이다. 장애일수를 기준으로 보상을 한다고 해도 사실상 사용자로서는 크게 의미가 없는 금액이다.
[서울=뉴스핌] 나은경 기자 = CJ ENM 홈페이지 갈무리 2020.07.06 nanana@newspim.com |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소비자에게 보상하는 방법보다도 애초에 블랙아웃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선제적으로 개입해 유료방송 시장의 기반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SO와 PP간 사적거래이기 때문에 양사가 해결할 일'이라고 정부가 말한다면 책임회피"라며 "유료방송은 공익성·공공성과 상업성이 맞물려 있고 지금은 C·P·N(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과 이용자 모두 조금씩 양보해야하는 상황이다. 업계는 물론 정부와 전문가 등 제3자가 포함된 협의회에서 CPS나 프로그램 사용료, 송출 수수료를 좀 더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산정하고 ARPU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며 "이제 디즈니, HBO 등 외산 OTT가 국내 시장에 쏟아져들어와 우리나라 업체들은 할 수 없는 서비스를 하게될 텐데 우리나라 방송시장이 일거에 휩쓸리기 전 하루빨리 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제도적 개선책 마련에 나섰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PP를 등록하고 SO를 재허가하는 권한을 가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사후규제기관인 방통위와 함께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 뉴미디어정책과 관계자는 "지금 당장 답하기는 어렵지만 (정부도) 제도개선 방안에 대해 여러 방향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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