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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의 수선전도] 상소 하나가 뒤흔든 수도이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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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 천도 꿈꿨던 광해군...극렬 반대에 수도이전 무산
서경 수도이전 놓고 내전까지 벌인 '묘청의 난'
수도이전은 '국민적 합의'...쉽게 말할 사안 아냐

[편집자]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 도봉산부터 남쪽 한강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울의 주요 도로와 동네, 궁궐 등 460여개의 지명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수선전도에 있는 지명들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승주의 수선전도'는 이 지도에 나온 동네의 발자취를 따라 지명과 동네에 담긴 역사성과 지리적 의미, 옛사람들의 삶과 숨결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 숨가쁜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계획입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광해군 4년(1612년) 음력 8월6일. '한 장의 상소'가 나라를 뒤흔든다. 상소를 올린 사람은 선왕인 선조 때부터 왕릉을 정하는 등 왕실의 풍수지리를 도맡았던 지관(地官) 이의신(李懿信)이었다.

이의신의 상소로 임진왜란 이후 어수선하던 정국은 격랑에 휩싸인다. 상소 내용은 다름 아닌 '천도(遷道)', 수도이전이다.

◆광해군, 교하천도의 꿈 

이의신의 상소 내용은 '한양의 지세가 다했으니 교하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교하는 지금의 파주 일대다. 조선시대에는 현재 파주시내와 운정 신도시(옛 교하읍), 탄현면 일대를 아우르는 지역으로 추정된다. 임진강과 한강이 맞닿고 서해가 인접한 넓직한 장소로 현재는 북한과 맞닿은 초접경지다.

이의신의 상소는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서에 전문이 나와 있지는 않다. 하지만 상소 이후 광해군은 신하들에게 "의논해보라"고 내려보낸다. 이후 예조판서 이정귀가 광해군에게 '수도이전 불가'를 강하게 주장하는 조선왕조실록 기록에서 이의신의 상소내용을 엿볼 수 있다.

술관 이의신이 상소하여, 도성의 왕기(旺氣·왕성하게 될 징조)가 이미 쇠하였으므로 도성을 교하현(交河縣)에 세워 순행(巡幸·왕의 이동)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니, 왕이 예조에 내려 의논토록 하였다. 예조 판서 이정귀가 회계하기를 "지금 의신은 임진년의 병란과 역변이 계속하여 일어나는 것과 조정의 관리들이 분당하는 것과 사방의 산들이 벌거벗은 것이 국도의 탓이라고 합니다. 풍수의 설을 받들어 믿을 만하고 가능치도 않은 일들이 낱낱이 맞는다 하더라도 도성을 옮기는 일은 막중 막대한 일이니, 비록 곽박이 건의하고 이순풍이 계책을 세웠다 하더라도 오히려 경솔히 의논하지 못할 것인데 더구나 의신의 방술에 대한 수준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1764년 이명유가 소지하던 교하군읍지(交河郡邑誌) <자료=한국학자료포털> 2020.07.30 fair77@newspim.com

이의신은 상소에서 '임진왜란이 발생했고, 조정의 대신들이 당파로 나눠 서로 싸우는 등 이유가 한양의 지기(地氣·땅의 기운)가 다해 그런 것이니 풍수지리를 참고하면 수도를 파주 교하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해군은 '교하천도'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교하천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면 왕기를 흩트리고 백성을 현혹케 한다는 이유로 '역적'으로 몰아 단박에 이의신을 처단했을 것이다.

'이의신의 상소내용을 논의하라'고 내려보낸 자체가 광해군도 수도이전에 대한 의지가 상당했다는 점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예조판서가 대표로 나섰지만, 신하들의 교하천도에 대한 반감은 상상이상이었다. 이정귀의 답변에는 가시가 돋혔다. 고려시대 수도이전 논란으로 내전으로 발전한 '묘청의 난'을 들먹이며 '자칫하면 반란으로 왕위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한다.

다시 이정귀의 발언이다. "소장이 들어오면서부터 사람들이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고 서로 뜬소문에 동요되어 더러는 '성상께서 이 말을 믿는다' 하고, 더러는 '새 궁궐에 나가지 않는 것은 이 말 때문이다' 하여, 원근이 모두 놀래고 현혹되어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이단이 국가에 해독을 끼치는 일이 예로부터 그러했으니, 고려 말엽에는 요승(妖僧) 묘청(妙淸)이 음양의 설로 임금을 현혹하기를 '송경(松京·개경)은 왕업이 이미 쇠퇴하였고 서경(西京·평양)에 왕기가 있으므로 도읍을 옮겨야 한다.'고 하여 드디어 새 궁궐을 서경 임원역에 지었으나 끝내는 유참 등의 변란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예전의 고사도 이와 같은데, 어찌 경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광해군은 불쾌했다. 그래도 수도이전에 대한 의지는 꺾지 않는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광해군이 수도이전지로 삼은 교하지역의 옛지도. 관해군인 임진왜란 이후 수도이전을 통해 조선의 제2건국을 꿈꿨다. 지도는 1872년 만들어진 작자미상의 조선후기 지방지도. <자료=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소>2020.07.30 fair77@newspim.com

왕이 다시 하명한다. "예로부터 새로 도성을 세운 제왕이 많았으니 본디 세웠던 도성을 아주 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터무니없고 근거도 없는 말로서 이 말을 믿는다고 임금을 지척하니 너무 놀랍다. 앞으로는 이러한 말을 경솔하게 내지 말도록 하라. 소장의 끝에 있는 회계의 일은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상의하여 의계토록 하라." (광해군일기 정초본 59권, 광해 4년 11월15일 을사 2번째 기사)

한바탕 난리가 난 지 두 달이 지난 광해군 5년(1613년) 음력 1월 3일. 광해군은 수도 이전을 본격 추진한다. 임진왜란 이후 의정부를 대신하여 국정 전반을 총괄한 실질적인 최고의 관청인 비변사에 비밀하교를 내린다. 하교는 '수도이전을 할 교하지역 산세를 탐색하고 그려오라'는 것이다.

광해군일기 정초본 62권 신유 3번째 기사다. 왕이 비밀로 비변사에 전교한 내용이다.

"자고로 제왕들은 반드시 성읍을 따로 건설하여 예기치 않은 일을 대비하였으니, 도읍 옮기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교하는 강화를 앞에 마주하고 있고 형세가 심히 기이하다. 독성산성의 예에 따라 성을 쌓고 궁을 짓고는 때때로 순행하고 싶다. 대신과 해조 당상은 헌관·언관·지관과 같이 날을 택해 가서 살피고 형세를 그려 오라."

왕의 비밀지시가 내려오자 조정은 쑥대밭이 된다. 신하들은 당파를 초월해 모처럼 '한마음'으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다. 논쟁은 2년 넘게 이어진다. 광해군은 "주나라는 만세가 우러러 본받는 나라인데 호경과 낙양이 있었고, 지금 명나라에도 남경과 북경이 있다. 의신이 국가를 위하여 큰 계획을 진달한 것은 이궁(離宮)을 창건하자는 데 불과할 따름이다"(광해군일기 정초본 79권, 광해 6년(1614년) 6월 14일)라면서 반발을 일단 피해가려 하지만, 신하들의 끈질긴 반대로 끝내 교하천도는 무산된다.

예조판서 이정귀를 비롯한 신하들의 '왕위를 내놓을 수도 있다'는 경고가 예언으로 돌아온 것일까. 천도론을 꺼낸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왕의 자리에서 쫒겨났다.

◆'동전'으로 점을 쳐 정해진 수도 한양

따지고 보면 조선왕조가 세워진 이후 수도로 낙점된 한양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양과 무악(현재 연세대학교 일대), 충남 계룡산 인근의 3곳을 수도 후보지로 정한 조선왕조는 처음에는 계룡산 일대를 수도로 정하고 궁궐 건설까지 착수한다.

'계룡산에 새 도읍을 정하였는데, 기내(畿內)의 주현(州縣)·부곡(部曲)·향소(鄕所)가 모두 81이었다.(태조실록 3권, 태조 2년(1393년) 3월 24일)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조선 태조와 태종 때 수도이전이 논의될 때마다 거론된 후보지 무악(빨간 표시). 현재 연세대학교 부근이다. <자료=수선전도>2020.07.30 fair77@newspim.com

하지만 신하 하륜이 반대하면서 한양으로 급반전한다. 태조 2년(1393년) 12월 11일 기사다.

"도읍은 마땅히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될 것이온데, 계룡산은 지대가 남쪽에 치우쳐서 동면·서면·북면과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또 신이 일찍이 신의 아버지를 장사하면서 풍수 관계의 여러 서적을 대강 열람했사온데, 지금 듣건대 계룡산의 땅은, 산은 건방(乾方·서북방향)에서 오고 물은 손방(巽方·남동쪽)에서 흘러간다 하오니, 이것은 송나라 호순신이 이른 바, '물이 장생을 파하여 쇠패가 곧 닥치는 땅'이므로 도읍을 건설하는 데는 적당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도읍을 정한 계룡산 땅이 크게 보면 한반도 중심부가 아니라 남쪽에 치우쳐 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길이 좋지 않아 도읍지로 부적합하다는 주장이다.

태조는 그 말을 듣고 다시 도읍지를 물색해 조정 대신들의 갑론을박 끝에 현재 한양도성으로 정하고 수도를 정하게 된다.

그런데 한양은 천도(1394년) 이후 5년만에 다시 수도의 지위를 내주게 된다. 2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 이후 명분과 눈치상 곧바로 왕위에 오르지 못한 태종 대신 잠시 왕위에 오른 정종이 개경으로 환도해 버린다.

임금이 종친과 좌정승 조준 등 여러 재상들을 모두 불러 서운관에서 올린 글을 보이고, 또 피방해야 될지의 가부를 물으니, 모두 피방하여야 된다고 대답하였다. 임금이 어느 방위로 피방하여야 할지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경기 안의 주현에는 대소신료와 숙위하는 군사가 의탁할 곳이 없고, 송도는 궁궐과 여러 신하의 제택이 모두 완전합니다."(정종실록 1권, 정종 1년(1399년) 2월 26일)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다시 한양천도가 추진된다. 피바람 끝에 왕위에 앉은 태종으로서는 정몽주를 죽였던 일 등을 기억하는 개경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을 터에다, 고려왕조의 향수가 남아 있는 개경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쿠데타로 왕위에 오른 태종으로서는 아버지 태조의 신뢰를 받는 일이 급선무였다. 태조가 공들여 세운 새왕조의 수도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아버지의 뜻을 받든다는 명분도 있고, 개경사람들의 곱지 않은 눈길을 피할 기회로 삼는데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인천=뉴스핌] 정일구 기자 =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마을 너머로 개성 송악산이 보이고 있다. 2020.06.19 mironj19@newspim.com

개경으로 환도한 지 2년만인 태종 1년(1401년) 음력 7월23일. 태종이 말한다. "내가 한양으로 돌아가겠으니, 서운관으로 하여금 떠날 날을 점치어 알리라."

새 왕조가 열렸다 해도 대소신료들의 주무대는 개경이었다. 어렵사리 집과 재산이 있는 개경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2년만에 당시로서는 신도시인 한양으로 왕이 돌아가겠다고 하니 속된 표현으로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만만찮은 반발이 이어졌다. 좌사간 윤사수 등을 순군옥에 가두었다가 용서했다. 4년이 흐른 태종 5년(1405년)에는 의정부에서 '흉년'을 이유로 한양 환도를 반대한다. 태종은 10월에는 반드시 한양으로 돌아갈 것을 천명하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한양은 조선의 수도가 된다.

당시 신하들의 반발이 극심하자 태종은 한양으로 재천도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동전점'까지 동원한다. 왕들의 조상 신주를 모신 종묘에 가서 동전으로 점을 쳐서 '한양에 다시 갈지 말지'를 결정한 것이다. 동전으로 점을 쳐서 조상들에게 물어보니 '한양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뜻이 나왔기 때문에 재천도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태종이 한양으로 재천도하기 1년전인 태종 4년(1404년) 음력 10월 6일. 임금이 종묘 문밖에 나가 여러 사람에게 포고했다.

"이제 종묘에 들어가 송도(개경)와 신도(한양), 무악(현재 연세대 부근) 고(告)하고, 그 길흉을 점쳐 길한 데 따라 도읍을 정하겠다. 도읍을 정한 뒤에는 비록 재변이 있더라도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조선 태종은 한양으로 다시 수도를 옮길 때 동전으로 점을 쳐 수도이전의 명분을 만들었다. 사진은 고려 성종 때 주조된 한국 최초의 동전화폐 건원중보(乾元重寶) <자료=한국은행 화폐박물관> 2020.07.30 fair77@newspim.com

점치는 물건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척전(擲錢)으로 하기로 한다. 척전은 한꺼번에 동전 셋을 던져 1개가 뒷면이 나오고 2개가 앞면이 나오면 단(單)이라 해 작대기 하나 모양으로 표시한다. 2개가 뒷면이 나오고 1개가 앞면이 나오면 탁(拆)이라고 작대기 두개를 나란히 놓은 모양으로 놓는다. 3개가 모두 뒷면이 나오면 중(重)이라 하여 O로 나타낸다.

3개가 모두 앞면이 나오면 순(純)으로 X로 표시한다. 세번 던져 하나의 괘(卦)를 만들어 길흉을 판단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개경을 도읍으로 정할 때도 사용했다는 이유 등도 고려됐다.

태종은 신하를 거느리고 종묘에 예배한 뒤 완산군 이천우·좌정승 조준·대사헌 김희선·지신사 박석명·사간 조휴를 거느리고 묘당에 들어가 꿇어앉아 이천우에게 명하여 척전을 던지게 했다. 한양은 2길 1흉이 나왔다. 개경과 무악은 모두 2흉 1길이었다.

동전점을 친 결과 '한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맞다'는 조상의 뜻이 나온 셈이다. 드디어 태종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다. 다만 정도전이 설계한 경복궁을 꺼려 창덕궁을 지어 이궁으로 삼았다.

◆수도이전 놓고 내전(內戰)까지

한국사에서는 수도이전을 놓고 내전(內戰)까지 벌어진 경우도 있다. 고려 인종 시대 '묘청의 난'은 서경(평양) 천도를 둘러싸고 국론이 둘로 갈라져 전쟁까지 불사한 사건이다.

고려사 열전 권제40 반역(叛逆) 부분에는 묘청에 대한 인물평이 서술돼 있다. 묘청은 서경의 승려로 정지상 등과 풍수지리설을 기반으로 서경천도운동을 벌였다. 당시 임금인 고려 인종이 묘청의 말을 듣고 서경에 궁궐까지 짓고 실제로 이동까지 한다.

그러나 고려사에는 '각종 이변과 재해'가 잇따르자 불안감을 느낀 왕이 수도이전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자 인종 13년(1135년)에 묘청이 분사시랑 조광·병부상서 유참, 사재소경 조창언·안중영 등과 함께 서경을 근거지로 삼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돼 있다.

반란은 1년간 이어졌지만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 등에게 진압된다. 고려사에는 김부식 군대가 진격하자 서경 사람들이 묘청의 머리를 베어 바쳤다고 저술돼 있다.

일제강점기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처에서 '묘청의 난'을 '조선역사 일천년래 일대사건'으로 명명했다. 신채호는 묘청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묘청의 난'에 대해서는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유의 낭가사상과 신흥 이데올로기로 떠오른 당시 유교사상이 맞붙은 사건으로 정의했다.

역사학자들의 견해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어 잠시 접어두더라도, '묘청의 난' 자체를 놓고 본다면 수도이전은 단순히 지도상 위치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내전까지 불사할 정도의 복잡다단한 사안임은 분명하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모습. /김학선 기자 yooksa@

◆헌재 행정수도 위헌판결 핵심은 '국민적 합의'

최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에 대해 위헌판결(2004헌마554)을 내렸다.

당시 헌법재판소 판결문을 읽어봤다. 세간에서는 '관습헌법'이라는 단어만 뇌리에 남았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들여다 본 판결문의 포인트는 '국민적 합의'다.

문자로 형식화한 헌법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수도=서울'이라는 관습적 명제를 인용해 서울은 관습헌법적으로 수도이며, 관습헌법도 성문헌법처럼 헌법과 다름없으니 수도를 이전하려면 헌법적 절차를 거치는 게 핵심이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합의와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투표를 통한 국민의견을 물어야 한다. 즉, 일부 정당과 집권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도이전을 논의하지 말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헌법에 명시하라는 이야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헌법개정에 필요한 전체의석(300석)의 3분의2(200석)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야당과 소통이 필수적이다.

수도이전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옛사람들도 곤욕을 치렀다. 한국사에서는 수도이전 이슈로 내전까지 발발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재산권 등이 걸려 있어 첨예하고 극단적인 논란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헌법재판소 판결이 최선은 아니지만 16년전 판결문에 드러난 '국민적 합의'라는 문구가 허투루 들리지만은 않는 시점이다.

fair7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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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가 '조선'인가 호칭 논쟁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최슬아 숭실대 교수는 29일 "북한이라는 호명이 상대방을 한반도의 일부처럼 위치시킨다면 조선이라는 호명은 하나의 독립된 행위자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북한을 인정해야 된다는 주장은 어떤 온정적인 제안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함으로써 불안을 낮추고 관계를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굉장히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정치학회(회장 윤종빈)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평화 공존을 위한 이름 부르기:북한인가 조선인가' 주제로 특별학술회의를 열었다. 통일부는 관련 논의를 공론화한다는 취지에서 이번 학술회의를 후원했다. 사회를 맡은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는 "호칭은 기본적으로 식별 기능을 갖지만 정치적 호칭이 되는 순간 이데올로기를 담게 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북한은 '대한민국'을 공식 명칭으로 부르며 남쪽을 외국으로 재정의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북한' '북측'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며 토론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들어서며 도어스태핑을 갖고 최근 북한 '핵시설' 발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김성경 "호칭은 분단 산물…'조선' 관계 전환 출발점" 김성경 서강대 교수는 "북한이라는 호명은 비공식적·약칭적 표현이지만 분단 80년 동안 누적된 정치적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서 "북한을 계속 북한이라고 부르는 한 우리 안에 북한이 계속 갇힐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학계에서는 (북한을) 조선, 북조선으로 부르는 경향이 좀 있었다"며 "남과 북의 국가 정체성이 이미 상당히 공고화돼 있는 현 상황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 맺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북한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 평화공존이나 통일에 더 도움이 된다는 논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통일은 남북이 서로를 인정 존중하고 그 맥락 안에서 관계를 맺고 남북 주민이 통일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 권은민 "국호 사용, 국가 승인 아냐…정치가 먼저, 법은 따라간다" 권은민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DPRK'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것이 꼭 국가 승인이나 정부 승인을 구성하지는 않는다"면서 "국가 승인은 정치적 행위이고 국가 의사 표시다. 그렇게 부르더라도 국가 승인과는 무관하다라고 선언을 하면 정리가 되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권 변호사는 "남북관계는 법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영역에 가까운 것 같다"면서 "과거에도 정치가 큰 틀을 규정하고 법과 제도가 따라가는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남북 기본합의서 제1조는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돼 있다"면서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국호 사용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는 취지의 기존 합의를 계승하는 것"이라면서 "당사자 표기는 상대방이 원하는 공식 국호를 불러주고 그것이 국가 승인은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면 된다"고 제언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군수공업을 담당하는 제2경제위 산하 중요 군수공장을 방문했다고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이 이 공장에서 생산된 권총으로 사격하는 모습.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03.12 yjlee@newspim.com ◆ 이동기 "독일도 경멸적 호칭 쓰다 공식 국호 전환…출발은 이름" 이동기 강원대 교수는 "서독은 동독을 경멸적 표현으로 불렀지만 긴장이 격화되면서 더 큰 평화 정치에 대한 구상이 폭발했다"면서 "국제 환경이 좋지 않을수록 평화 화해 논의가 공존에 대한 요구나 필요를 폭발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독일 정치권에서는 헤르베르트 베너 전독문제부(통일부) 장관이 가장 먼저 동독 공식 국호를 사용했다"며 "당시에는 언론의 융단 폭격을 받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줬다. 국제법적으로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로 승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인내만으로도 부족하다"면서 "결국 원칙 고수와 실용주의가 결합하는 모든 출발은 국호의 제대로 된 호명이고,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근본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호칭 변경, 굴복 아닌 공존 가능성 넓히는 정치적 전략" 패널 토론에서 전문가들은 조선 호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김태경 성공회대 교수는 "젊은 세대에는 '둘의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점"이라며 "우리가 조선을 일종의 주권 국가로서 인정하는 과정은 결국 우리에 대한 자기 인정과 그들에 대한 인정이 같이 결합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주희 국립부경대 교수는 "핵심은 인정과 통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라면서 "실질적으로 가는 데 있어서는 담론과 제도, 정치 차원에서의 접근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호칭을 바꾸는 것은 굴복이 아니라 적대를 줄이고 공존의 가능성을 넓히는 하나의 정치적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hyun9@newspim.com 2026-04-2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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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알發 쇼크에 리츠업계 초긴장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국내 1호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인 제이알글로벌리츠가 자산 가치 하락과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상장 리츠 가운데 사실상 첫 디폴트 사례가 발생하면서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개별 리츠의 리스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며, 전체 시장으로 확산되는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는 관련 시장에 대한 긴급 점검에 착수하는 한편, 필요 시 유동성 지원과 함께 구조 개선을 병행하는 등 시장 안정화 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AI 그래픽 생성=정영희 기자] ◆ 무너진 해외 부동산 가치…유동성 위기 예견됐나 30일 리츠업계에 따르면 제이알투자운용의 기업회생 절차 돌입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긴장감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국내 대형 독립계 리츠 자산관리회사인 제이알투자운용이 2020년 국내 최초로 유가증권시장에 안착시킨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다. 벨기에 브뤼셀 중심부에 위치한 파이낸스타워와 미국 뉴욕 맨해튼의 498세븐스애비뉴 등 대형 상업용 오피스 빌딩을 기초 자산으로 편입해 운용해 왔다. 그러나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벨기에 브뤼셀 파이낸스타워 가치가 떨어지면서, 단기사채 400억원을 상환하지 못해 지난 27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한국거래소는 전일 매매 거래를 정지하고 관리종목으로 지정했다.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지난 1월 1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공시했으나 해외 자산의 감정평가서 수신 지연 등을 이유로 한 달 만인 2월 이를 자진 철회했다. 핵심 자산인 벨기에 파이낸스타워의 감정평가액이 급락하면서 현지 대주단과 약정한 담보인정비율을 초과했다. 임대료 등으로 발생한 현금 흐름을 대출 상환에 우선 충당하도록 묶어두는 캐시트랩(Cash Trap, 현금 동결)이 발동되더니 기업회생으로 이어졌다.  박광식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올 들어 차입 만기 도래에 따른 차환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환헤지(환율 고정 상품) 정산금 명목으로 약 1000억원의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시급하다"며 "캐시트랩 해소를 위해서는 약 7830만유로(한화 약 1354억원)의 현지 차입금 상환을 위한 추가 재원 조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일제히 꺾인 리츠주…시스템 리스크 확산은 기우? 이 같은 악재에 상장 리츠 전체에 대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실제로 한국거래소 거래 동향을 살펴보면 이날 리츠 종목들은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마스턴프리미어리츠가 큰 폭으로 미끄러진 것을 비롯해 한화리츠, 삼성FN리츠, SK리츠, 코람코라이프인프라리츠 등이 급락세를 면치 못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드러냈다. 뚜렷한 성장 가도를 달리던 리츠 업계는 발을 동동 구르는 처지가 됐다. 한국리츠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종가 기준으로 국내 증시에 상장된 25개 리츠의 시가총액은 9조7778억원을 기록했다. 리츠 시장은 지난해 1월 8조103억원 수준에서 같은 해 9월 9조2048억원을 돌파했고 5개월 만인 지난 2월에는 10조원을 넘어서는 등 몸집을 불려왔다. 그동안 일반 주식에 밀려 상대적으로 소외됐지만, 최근 코스피 강세장 속에서 안정적인 피난처로 주목받은 결과다. 법적으로 배당 가능 이익의 90% 이상을 의무적으로 배당해야 하는 구조적 특성 덕분에 확실한 현금 흐름을 선호하는 투자 자금이 대거 몰린 것도 호재 원인 중 하나로 제시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파장이 전체 금융 시장으로 퍼질 것이란 예측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내 상장 리츠 22개사 중 해외 자산을 보유한 비중은 14.3%이지만, 전체 자산 기준으로 환산하면 해외 자산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국내 상장 리츠의 총투자 자산 대비 해외 자산이 차지하는 파이가 극히 작아 전이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지난달 말 자산 구성 및 투자 유형별 포트폴리오 비중을 보면 주택이 44.0%로 가장 컸다. 오피스는 35.3%에 머물렀으며 리테일 6.4%, 물류 6.4%, 혼합형 3.6%, 기타 3.2%, 호텔 1.1% 순으로 나타나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해외 오피스 리스크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수희 LS증권 연구원은 제이알리츠의 최근 기준 발행 잔액이 약 4000억원으로 전체 크레딧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찻잔 속의 태풍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일반 크레딧물과 달리 리츠가 발행한 회사채는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기관 투자자 중심으로 굴러가는 국내 크레딧 시장 심리에 타격을 주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 역시 이번 이벤트가 단기사채 미상환으로 불거진 만큼 단기 자금 시장 경색이 회사채 시장으로 파급될까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최근 풍부한 단기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어음 금리가 안정적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어 과거의 신용 위기와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 국토부 방화벽 구축 총력전…상장리츠, 자산 다각화 과제로 다만 해외 부동산 자산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하는 리츠 종목들은 당분간 위축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해외 부동산 자산에 투자하는 상장 리츠는 KB스타리츠, 미래에셋글로벌리츠, 마스턴프리미어리츠,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 디앤디플랫폼리츠, 이지스레지던스리츠 등이다. 이 중 해외 자산 구성 비중이 100%인 곳이 3개사, 50% 이상이 2개사, 50% 미만이 3개사로 파악됐다. 대표적으로 디앤디플랫폼리츠는 일본 소재 아마존 물류센터에 간접 투자 중이며 이지스레지던스리츠는 미국 소재 임대주택 및 대학 기숙사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은미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해외 자산의 장부 가치 비중이 각 리츠 총자산의 5~30% 수준에 그쳐 전반적인 쏠림 현상은 없다"면서도 "해외 자산을 보유한 개별 리츠의 경우 현지 대출 약정 위반에 따른 현금 흐름 통제와 국내 채무 차환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동시에 겪을 수 있어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의 한파도 부담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주요 도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4.7% 떨어졌다. 고점을 찍었던 2022년과 15%나 증발했다. 런던과 베를린 등 유럽 주요 도시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30% 넘게 폭락했다. 정부도 사태의 엄중함을 인지하고 발 빠르게 방화벽 구축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오후 김이탁 제1차관 주재로 금융위원회, 한국부동산원, 금융감독원 등 관계 부처를 긴급 소집해 점검 회의를 열었다. 리츠 시장 전반의 현황을 점검하는 한편, 투자자 보호를 위한 대응 방향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이알글로벌리츠의 부실화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전일 합동 검사에 착수했으며, 불법 행위가 적발될 경우 엄정 대응할 방침"이라며 "시장 안정을 위해서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최대주주가 되는 앵커리츠를 공급하고, 변동성이 통제 수준을 넘어설 경우 채권 및 자금 시장 안정 프로그램 규모를 즉각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사태 수습을 넘어 리츠 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장 리츠의 주가를 궤도에 올려놓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보의 투명성이 담보된 상태에서 시장 상황에 맞게 자금 조달의 유연성을 높여주고, 우량 자산 편입과 리츠 간 합병을 통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며 "자산관리회사 역시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운용 현황과 배당 전략 등을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함으로써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불신을 거둬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2026-04-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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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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