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청구 기각 → 2심 "소송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다"…일부 인정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미끄럼틀을 타다 떨어져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망한 5세 어린이에게 놀이터의 관리 책임자인 구청이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는 구청의 관리 감독으로 인한 사망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도 소송에 충실히 임하지 않은 책임을 물었다.
서울고법 민사합의22부(기우종 부장판사)는 사망한 송모 군의 유족이 서울특별시 서초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뒤집고 구청이 4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위 사건과 관계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송군은 지난 2017년 11월 4일 서초구의 한 공원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거꾸로 오르다 110cm 아래로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듬해 3월 숨졌다. 송군의 부모는 당시 놀이터에 충격흡수용 표면재가 제대로 설치하거나 관리하지 않았다는 이유와 설치검사 이전에 공원을 개방한 직무상 의무위반이 있다며 1억7000여만원대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 과정에서 구청 측은 미끄럼틀 주변의 충격흡수용 표면재 설치검사 합격 결과를 제출했다. 이후 구청은 법원에 알리지 않은 채 표면재 공사를 한 뒤 미끄럼틀을 철거했다.
1심 재판부는 "구청 소속 공무원이 설치검사 전 개방해서는 안 될 의무를 위반한 잘못은 있지만 이 사건 사고와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하기가 어렵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2심은 구청이 1심 과정에서 보인 여러 행위들에 책임을 물었다.
송군의 부모는 2심 과정에서 법원 사실조회신청을 통해 구청이 송군이 숨진 뒤인 2017년 11월 7일자로 대한산업안전협회에 신청한 설치검사 결과, 미끄럼틀 외 다른 놀이기구 주변에 설치된 충격흡수용 표면제의 HIC(머리상해기준·Head Injury Criterion)값이 기준을 초과해 불합격 했다는 기록을 받아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미끄럼틀, 충격흡수용 표면재의 설치·관리상 하자가 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사고와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면서도 "소송진행 관련 직무상 의무위반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2심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국가배상소송절차에서 적어도 상대방의 증거신청에 성실히 협조하고 법원의 성명에 성실히 응할 의무가 있다"면서 "피고는 법원 측의 설치검사 결과, 정기시설 검사 결과 등을 제출하지 않았고 미끄럼틀이나 충격흡수용 표면재를 법원과 원고에게 알리지 않고 제거해 원고 청구를 증명할 기회가 박탈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청 소속 공무원의 이같은 의무위반으로 인해 원고들이 큰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는 이로 인한 손해에 해당하는 위자료 4000만원을 배상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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