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 번호, 의약품 '주민등록번호'…제조·유통 추적 가능
전문가 "우연한 사례일 수 있지만…식약처 등 철저히 조사해야"
[서울=뉴스핌] 박다영 기자 =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접종받은 후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는 가운데 동일한 제조(로트) 번호 백신을 접종받고 숨진 사례가 나왔다. 추후 독감 백신 접종에 대한 정부 방침에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2일 오후 4시 기준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 이후 사망 사례로 25명이 신고됐다. 이중 로트 번호가 같은 독감백신 3개 제품을 접종받은 사망자가 2명씩 발생했다.
자료사진[사진=뉴스핌DB] 2020.10.22 lkh@newspim.com |
로트 번호가 같은 백신은 ▲GC녹십자의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 (Q60220039, 어르신용)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셀플루4가(Q022048, 어르신용)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셀플루4가(Q022049, 어르신용) 등이다. 각각 2명이 백신을 접종한 후 사망한 사실이 확인됐다.
LG화학의 플루플러스테트라(YFTP20005,어르신용)를 접종받은 2명도 사망사례에 포함됐지만, 보건 당국에 따르면 이 중 한 명은 사인이 질식사로 확인됐다.
로트 번호는 한 번에 생산되는 제품의 단위를 의미한다. 의약품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고유 번호다. 이 번호로 제조, 유통 등 전 주기를 추적·파악할 수 있다. 독감 백신의 로트 번호가 같다는 것은 동일한 조건에서 만들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에 같은 로트 번호의 백신을 접종받고 사망한 사람이 다수일 경우, 백신에 문제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제조사별로 다르지만, 1로트 당 14만~15만 도즈(14~15만회 접종분)가 생산된다.
그 동안 질병청은 같은 로트 번호의 백신을 맞고 사망한 사례는 없어 백신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내렸다. 지난 22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같은 로트번호 백신에서 추가 사망자가 발생하면 해당 로트는 봉인조치하고 접종을 중단하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재검정을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질병청이 해당 로트 번호 백신을 봉인하고 품질검사에 돌입할 경우 최대 45만회 접종 분량에 대해 회수에 들어가게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독감이 동시유행하는 '트윈데믹'을 대비하기 위한 독감 백신 접종 사업에는 차질이 생기게 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접종 후 사망사례는 백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오는 29일까지 독감백신 예방접종 사업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한 로트 당 생산량에 비해 사망 사례가 소수기 때문에 확률상 우연한 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추후 철저한 원인 조사가 필요하며 백신 접종에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봤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개 로트에서 생산되는 백신이 15만도즈인데 이 중 2명이 접종받고 사망한 것은 우연한 사례일 수 있다"며 "고령자들이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병원에 몰려 백신을 맞는 환경 자체가 스트레스를 유발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루 백신 접종자 수를 정하는 등 속도조절이 필요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당 로트 번호를 가진 남은 백신을 수거해서 품질 검사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 식약처 관계자는 "아직까지 품질 검사 등에 대해 논의된 바는 없다"며 "오늘 질병청에서 관련 회의를 한 후에 조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시행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한편, 질병청은 이날 예방접종 피해조사반 3차 회의를 가진다. 백신 접종 후 사망사례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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