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정수정이 스크린 데뷔작 '애비규환'에서 당돌하고 똑부러지는 요즘 애들을 연기한다. 모든 '예쁨'을 내려놓고 민낯에 임신부 분장도 불사했다.
'애비규환' 개봉을 앞두고 6일 소격동 한 카페에서 정수정과 만났다. 정수정은 토일이와 꼭 닮아보이다가도, 전혀 다른 면도 동시에 내보였다. 돌아보니 의외로 계속해서 도전을 해왔다는 그는 모든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캐릭터 토일을 고른 이유를 천천히 설명했다.
"시나리오만 볼 땐 상상이 안갈 때가 있어요. 영화가 처음이다보니 어떻게 나올지 진짜 감이 안잡혔었죠. 완성작을 보니 생각보다 재밌어서 좋았어요. 스크린에 제가 나올 땐 스스로 약간의 어색함이 없을 순 없었지만요.(웃음) 그래도 신기하고 좋았어요. 시나리오 처음 읽었을 땐 사실 토일이가 훨씬 센 느낌이었어요. 톤 조절을 어떻게 할지 감독님과 많이 얘기했죠. 마이웨이적인 인물인데 너무 말을 강하게 하면 미워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어떻게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해하게끔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지금의 토일이를 만들어 나갔어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애비규환'에 출연한 배우 정수정 [사진=에이치앤드] 2020.11.06 jyyang@newspim.com |
정수정이 '세다'고 느낄 정도로, 극중 토일은 똑부러지는 스스로에게 도취된 캐릭터다. 연하 남자친구 호훈(신재휘)과 사고를 치고, 임신 사실을 5개월이 넘게 가족에게도 숨긴다. 다짜고짜 배가 부른 채로 '무조건 낳겠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관객들은 절로 부모의 마음이 돼 한숨을 쉬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얘가 진짜 자기 멋대로인게 글로 보이니까 상상으로만 그려봤죠. 누가 연기한 걸 보는 게 아니라서 더 직설적으로 느껴졌어요. 너무 자기 생각만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게 너무 센 거 아닌가?' 했어요. 리딩을 하면서 감독님이랑 얘길 나누고 조금씩 이해했어요. 저는 주변에 다 공유하고 털어놓는 스타일이거든요. 머리가 여러 개면 방법도 여러개 생긴다는 주의예요. 고민이 있을 때 여기저기 물어보죠. 물론 내가 제일 잘 알 수도 있지만 나를 아끼는 사람들 의견을 늘 들어보려 해요."
의외로 정수정은 첫 영화에 임산부 분장을 하면서 전혀 고민이 없었다고. 처음에 '임산부 역'이라고 들었을 땐 한숨을 쉬었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단번에 출연을 결정했다.
"작품을 고를 때 역할에 끌릴 때도, 이야기에 끌릴 때도 있지만, '애비규환'은 둘 다였어요. 나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는 토일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요즘 시대 여성을 대변하는 느낌이기도 해요. 이 캐릭터도 하고 싶은데, 그게 임산부였고, 가족의 얘기였죠. 사람들은 실패하고 실수할 수 있지만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에 유머도 담겨 있어서 스토리적으로도 마음에 들었어요. 이걸 하기까진 전혀 고민을 안했던 것 같아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애비규환'에 출연한 배우 정수정 [사진=에이치앤드] 2020.11.06 jyyang@newspim.com |
토일을 연기하면서 정수정은 그를 짠하게 여긴 순간도 있었다고 했다. 어쨌든 토일이 처한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 가족의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기에 막연하게 다가갔지만, 결국은 '그럴 수 있겠다'고 받아들였다. 다행히 그가 고민한 모든 흔적이 영화에 드러나고, 결국은 영화 전체의 메시지와도 닿게 된다.
"토일이는 뭐든 혼자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져요. 그게 좀 짠하죠. 저와는 너무 달라요. 내 친구가 이랬으면 옆에서 도와주고 싶을 것 같고 왜 혼자 짊어지려고 하냐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런 가정에서 혼자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왔다지만, '그게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죠. 저는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엄마와 관계는 토일이네와는 좀 다르지만, 베스트프렌드처럼 지내요. 후반부엔 토일이도 엄마와 조금은 친구처럼 편안해지죠. 토일이는 그래도 엄마와 제일 닮은 것 같아요. 하하. 그걸 부정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나중에야 깨닫고 '엄마도 이랬구나' 하는 순간이 찾아오는 거죠."
영화 속 토일은 아빠를 찾아나섰다가 엄마의 과거와 마주하고, 실패를 목도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결혼은 망하지 않을 거라 굳게 믿는다. 출산 후 5개년 계획을 PPT로 만들어 보여줄 만큼 당돌한 딸이 무너지는 순간, 모든 '웃픈' 유머가 폭발한다.
"토일이는 '호훈이 얘라면 결혼해서 너무 잘 살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겠죠. 그러다 얘가 사라지면서 불안함이 생기고 '내가 생각했던 가정이 아니라 우리집처럼 될 것 같네'. 두려움에 패닉이 온 거죠. 그 때가 딱 온 가족이 모였을 때예요. '이모양'이라고 말할 정도로 감당이 안되는 거죠. 굳게 믿고 질질 혼자 끌고 왔는데 확 터진 느낌이죠. 엄마랑 두 아빠가 '우리처럼 될까봐 못하겠다는 거냐'고 묻는데 저희 가족도 굉장히 솔직하고 직설적이거든요. 저는 그냥 시원했어요. 이해하기 쉽게 돌려 얘기하지 않으니까. 다들 속 시원하시면 좋겠어요. 하하."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애비규환'에 출연한 배우 정수정 [사진=에이치앤드] 2020.11.06 jyyang@newspim.com |
지금은 어엿한 10년차 배우 정수정이지만, 시작은 가수였다. 그룹 에프엑스의 멤버로 오래 활동해왔고 팬들의 뜨거운 사랑도 받았던 그다. 자연히 가수 활동에 대한 끈은 놓지 않고 있었다. 그는 시기와 기회가 잘 찾아온다면, 그룹이든 솔로든 가수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가수로 무대에 설 거란 생각은 막연하게 늘 하죠. 연기도 자연스럽게 기회가 와서 시작하게 됐던 거고, 가수는 했던 거니 제가 안할 이유는 없어요. 타이밍이 잘 맞고 좋은 곡을 만나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룹 활동을 사랑해주신 분들이 많았고, 예전부터 솔로를 해보라는 제안도 있었어요. 준비도 했었지만 선보이진 못했죠. 코로나 없어지고, 기회가 오면 멤버들이 모일 수도 있겠죠. 제 팬들이 어릴 때부터 좋아해주신 분들이라 많이 그리워하세요. 타이밍이나 상황이 안맞았던 게 좀 속상하고 아쉽죠. 기회가 된다면 뭐든 하고싶어요."
다만 일단은 배우 정수정의 입지를 더 다지는 게 먼저다. 그는 지난 10년간을 천천히 돌아보며 "별로 일관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면서 웃었다. 의외로 사극을 한번도 안해봤다는 그는 다양한 장르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캐릭터로, 대중과 만날 준비 중이다.
"화려한 역도 해봤지만, 감옥 간 사람 여자친구도 했고, 여신, 임산부도 하고 군인도 했죠. 좀 도전정신이 있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이제 돌아보니 새로운 걸 좋아하나봐요. 할 때는 모르고 하다가 문득 그렇게 느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아직 사극을 안해봤어요. 한복도 별로 안입어봤고요.(웃음) 로맨틱 코미디도 안해봤죠. 고민은 늘 같아요. 어떻게 그 캐릭터로 보여야 할까. 늘 어렵고 작품 시작 전에 좌절을 겪죠.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나 불안이 있지만, 제 작품을 누구나 '한 번 보고싶다'고 느낄 정도로 해내고 싶어요."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