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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로이터=뉴스핌] 김선미 기자 = 환경·사회·지배구조(ESG: 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등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재무화하려는 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는 가운데, ESG 지표를 수치화해 기업가치에 반영하는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포트폴리오 균형을 찾고자 하는 투자자들에게 '가장 지속 가능한 기업'과 '가장 환경 파괴적인 기업'을 구분할 수 있는 근거를 수치로 제시하려는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는 것.
[그룬하이데, 독일 로이터=뉴스핌] 김선미 기자 =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가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그룬하이데에 기가팩토리를 짓고 있다. 2020.11.05 gong@newspim.com |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영국 셰필드대학의 질 앳킨스 박사는 '멸종 회계'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꿀벌 등 동식물을 멸종으로 몰아가는 기업들의 행태를 수치화하고 이로 인해 해당 기업에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피해 또한 수치화한다는 것이다.
앳킨스 박사는 "각종 환경 문제에 금융시장이 큰 원인을 제공한 만큼, 이를 해결할 책임도 금융시장에 있다"고 말했다.
앳킨스 박사는 단순히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멸종 회계는 기업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금융 및 회계 차원에서 정확히 수치화해서, 연기금과 은행, 보험사 등 투자자들이 떠안아야 할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하려는 것이다.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이나 기업의 지속가능성 등급을 정하는 서스테널리틱스(Sustainalytics) 등은 이미 기업의 ESG 신용등급을 책정해 투자자들에게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등급 결정의 목적은 기업이 주주들에게 실적을 보고하는 방식에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기업의 활동이 동식물에 미치는 과학적 영향을 기업들이 직접 제시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앳킨스 박사의 멸종 회계부터 '탄소 조정 주당순익', 플라스틱 폐기물이 기업의 밸류에이션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수치화한 기업가치까지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오늘날 환경 위기가 심각한 만큼 일부 투자자들과 활동가들은 월가 붕괴 이후 근본적 회계 개혁이 이뤄졌을 때만큼이나 기업 실적 보고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 최초 사회성과연계채권(SIB) 운용사인 영국 브릿지스펀드매니지먼트의 로널드 코언 공동 창립자는 "1929년에는 수익 계산이 전혀 투명하지 않았다. 기업들은 자신들만의 회계 원칙을 입맛에 맞게 골랐으며 회계 장부를 감사할 감사관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기업 회계와 수익은 그 때와 비슷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덧붙였다.
◆ "ESG 수치화, 강제성 필요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위트워터스랜드 대학 연구진과 협업 중인 앳킨스 박사는 멸종 회계를 연간 실적 보고에 도입하는 것을 의무화하면 급격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사업장 인근 멸종 위기 동식물의 개체 수뿐 아니라 기업 활동이 멸종 위기종을 더욱 멸종 위험으로 몰아넣는지를 파악하고 이러한 동식물을 보호할 계획을 수립해 투자자들에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지속가능 금융시장 네트워크(Network for Sustainable Financial Markets)의 마티나 맥퍼슨 회장은 "멸종 회계를 통해 투자자들은 기업 수익성과 기업활동이 자연에 가하는 리스크 간 연관성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고찰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은 ESG의 여러 부문에 걸쳐 기업이 미치는 부정적 및 긍정적 영향을 미달러 가치로 환산해 비교하기 쉬운 모델을 제시했다.
이들은 미국 4만 가구로부터 얻은 소비 구매 데이터 및 농무부의 영양 정보 등 통상 기업의 연간 실적 보고에는 포함되지 않는 데이터를 반영해, 기업이 인류의 영양부터 온실가스 배출, 플라스틱 쓰레기 등과 관련해 창출하는 가치 및 비용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를 이끄는 조지 세라페임 박사는 "기업 시스템의 배관을 모두 바꿔야 한다"며 "기업 행동 및 자원 배분 변화를 유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강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워싱턴 소재 칼버트 리서치 앤 매니지먼트 등도 지난 10월 하버드대의 '임팩트 투자 이니셔티브'(Impact-Weighted Accounts Initiative)에 동참했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존 스트루어 칼버트 최고경영자(CEO)는 이 프로젝트로 인해 투자자들이 기업가치를 산출하는 방식이 혁신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겉보기에 많은 수익을 올리는 기업이 막대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양산한다면 기업가치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 결국 투자자들이 주도해야
일부 회의론자들은 매우 다양한 형태의 ESG 가치를 돈의 가치로 환산하려는 노력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덮어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기업이 더욱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수용할 계획이 있는지, 있다면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캠브리지 지속가능성 리더십 연구소의 폴 피셔 전 영국 영란은행 정책위원은 "지나친 정확성을 추구하다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본토벨애셋매니지먼트의 ESG 책임자인 수디르 록-세넷은 기업들이 수치를 조작해 비교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의 회계 및 수익 조작은 이미 만연한데, ESG 가치까지 환산하라고 하면 조작의 기회만 더욱 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적 행보에 나서는 기업들이 있다. 컨설팅 업체 KPMG와 S&P글로벌트루코스트는 이미 기업들과 함께 기업 활동 및 공급망의 환경 및 사회적 영향의 가치를 환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KPMG는 비록 프로젝트 및 제품 수준에 그치고는 있지만 수백개 기업의 환경 및 사회적 영향의 가치를 수치로 환산하는 일을 돕고 있다고 전했다.
구찌를 소유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 케어링(Kering, EPA: KER)은 이산화탄소 배출, 물 사용량, 수질 오염, 용지 사용, 대기 오염, 쓰레기 등의 수치를 재정적 가치에 반영해 지속가능성 개선을 수치로 확인하고 있다.
케어링의 2019년 연간 실적 보고에 따르면, 부정적 환경 영향은 5억2400만유로로 전년비 비슷했으나 전체 매출 대비로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식품 기업 다논(Danone, EPA: BN)은 올해 일반 수익 및 매출과 더불어 탄소 조정 주당순익을 발표했다. 이산화탄소 비용을 톤당 35달러로 산정한 결과, 다논의 2019년 탄소 조정 주당순익은 전년비 12% 증가했다. 이는 8% 증가한 일반 주당순익보다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표면적인 환경 친화적 노력만을 부각시킬 뿐, 실제적으로 대차대조표나 실적 발표에 정확히 반영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기업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앳킨스 박사는 투자자들이 각 기업의 환경 및 사회 파괴적 영향을 수치화한 데이터를 접하게 되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업들은 더욱 빨리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g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