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유태오가 '새해전야'에서 한쪽 다리가 없는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수 역을 연기했다. 마음 속으로는 누구보다 자유롭지만 자꾸만 처한 상황을 생각하게 되는 래환은 한계를 실감하는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오는 10일 개봉을 앞두고 '새해전야'의 유태오와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독일에서 오래 살았던 탓에 화상채팅으로 진행되는 인터뷰가 낯설 법도 했지만, 그의 표정은 밝았다. 특히나 '한국판 러브 액추얼리'에 출연했다는 뿌듯함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홍지영 감독님의 '결혼전야'는 못봤고 바로 전작인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봤어요. 김윤석 선배와 변요한씨가 나왔는데 감독님의 감수성이 어떠신지 좀 알 수 있었죠.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지금도 눈이 느려서 천천히 읽고 답을 드리는데, 시나리오도 굉장히 집중하면서 천천히 읽어요. 그래야 묘사가 잘 들어오고 이해가 되거든요. 그때부터 우리나라 판 러브 액추얼리 같은 느낌이 들었고 재밌게 읽었어요. 영화로 구현된 걸 보면서 시나리오보다 더 잘나왔단 생각은 들었죠. 특히 아르헨티나 장면들이 너무 시원하고 좋더라고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새해전야'에 출연한 배우 유태오[사진=에이스메이커] 2021.02.05 jyyang@newspim.com |
유태오는 극중 장애를 가진 래환 역을 연기했고, 그의 직업은 스포츠선수다. 그 역시 농구선수를 꿈꿨던 시절과 좌절이 있었기에 실제 과거가 연상된다는 얘기도 나왔다. 유태오는 "연기 준비 단계에서는 과거의 경험에 비춰서 상상을 조금은 했다"고 털어놓으면서도, 아주 깊게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냥 래환이의 사정에서, 입장에서 생각하고 싶었어요. 패럴림픽 국가대표들을 조사해보니까 대부분 전에 다른 분야의 운동선수였었고 사고 나셨던 분들은 90% 정도가 운동하다 사고를 당하고 트라우마가 있고 장애를 얻게 된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해소가 되고 다른 정체성을 찾게 돼서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죠. 고립감이나 외로움을 지나치게 깊게, 짙게 드러내려고 하진 않았어요."
대신에 유태오가 집중한 건 오월과의 관계였다. 7년차 연인인 오월과 래환의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 서로에 대한 신뢰 같은 것을 쌓아가는데 더 집중했다. 다행히 상대역인 최수영과 호흡도 잘 맞았다.
"준비한 대로 첫 미팅부터 수영씨랑 굉장히 편하게 연기했어요. 서로 각자의 느끼는 편안함이 화면 속에서 비춰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바라기도 했죠. 영화에 잘 담긴 것 같아요. 다른 세 커플들과 달리 우리만 7년간 사귄, 진행형인 연인 관계였거든요. 가장 오래 사귄 커플이라 그런 편안함이 느껴지길 바랐고 그렇게 연기했어요. 감독님도 그걸 원하셨고요. 수영씨나 저나, 한 상대와 오랜 연인, 부부 사이를 유지해온 경험 때문에 거기서 오는 여유가 있었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새해전야'에 출연한 배우 유태오[사진=에이스메이커] 2021.02.05 jyyang@newspim.com |
유태오가 래환을 맡게 되면서, 홍지영 감독이 조금은 설정을 수정한 부분도 있었다. 영화 속 래환은 4살 때 독일로 건너가 장애가 있어도 주변의 편견없이 자라온 인물이다. 아주 잠깐, 유창한 독일어로 혼잣말을 중얼중얼 하는 신도 등장한다.
"원래 한국말로 돼있던 부분이었는데 감독님이 저한테 맞춰서 조굼 바꾸신 유일한 부분이에요. 독일 교포 출신이고 독일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선입견 없이 자랐단 설정을 추가해주셨죠. 혼자 중얼중얼거린는 대사를 독일어로 그렇게 길게 연기해본 건 처음이었어요. 예전에 독일에서 연극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제가 쓴 자작극이었고요.(웃음) 다른 작품에서 독일어를 이렇게 한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유태오는 현장에서 애드리브를 하거나 순발력있게 대처하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대신 숱한 연습과 준비를 통해 현장의 모든 분위기와 상황에 대비한다. 이 과정을 길게 설명하는 그에게서, 교포 출신 배우로서의 고민이 조금은 묻어났다.
"현장에서 표면적으로 뭔가를 더 하는 건 저를 긴장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예요. 순발력이 빠른 배우는 아니어서 미리 다 연습해서 만들어놓고 현장에 가는 편이죠. 입체감을 위한 준비는 어떤 역이든, 어떤 언어든 미리 다 손으로 대사를 적으면서 연습해요. '레토'에서 러시아어를 준비하면서 저의 언어로 적어서 익히고, 잘 되는 경험을 해봐서인지도 몰라요. 대사를 써내면서 눈과 신경을 통해서 손끝으로 나오는, 내 몸을 통과했다는 점에서 소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죠. 자연히 한 마디씩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요. 그 후엔 '왜 이런 말을 했지? 왜?' 하고 이력서를 계속 적어봐요. 그 후엔 믿고 다 버리죠. 현장에서는 뭘 갑자기 하는 것보다는 잘 소화된 상태에서 캐릭터적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들이 있겠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새해전야'에 출연한 배우 유태오[사진=에이스메이커] 2021.02.05 jyyang@newspim.com |
유태오는 오월과 래환 뿐만 아니라 '새해전야'에 나오는 모든 커플의 이야기에 애정을 드러냈다. 이 영화에 처음부터 끌렸던 이유도 '러브 액추얼리' 같은 클래식한 로맨스적인 느낌, 장르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촬영 후에도 유연석, 이동휘, 김강우의 연기를 보며 배운 점이 많았다고.
"사실 배경 설정을 볼 때 유연석씨 이야기가 욕심났어요. 하하. 멋진 나라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으니까요. 또 이동휘씨 커플 이야기도 제 취향이었죠. 동휘씨가 그 연기를 정말 유쾌하게 재밌게 풀어가시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할 줄 몰라요. 스토리를 완전 멜로로 읽었어요. '만추' 같은 느낌으로요. 하하. 또 영화로 보니까 김강우 선배님이 형사 역을 너무 귀엽게 연기하셨더라고요. 까불기도 하고 순수함을 갖고 있는 느낌을 잘 살리셔서 색다른 매력이 보였죠. 유인나씨의 이야기가 조금 다크한데 밸런스를 김강우 선배가 잘 잡아주셔서 재밌었어요. 전형적인 형사가 아니라 이렇게 재밌게 잘 살릴 수 있구나 하는 공부가 됐죠."
유태오는 이번 영화와 역할을 통해 사랑의 긍정성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분명 영화에는 남들의 시선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자신만의 사랑을 하자는, 약간은 교훈적인 메시지가 확고하다. 클래식한 로맨스에 끌렸던 '새해전야'에 이어지는 그의 다음 행보는 어떨까. 2018년 '레토'로 주목받은 이후 3년, 그는 여전히 연기에 목마르다고 했다.
"교포 설정이 아닌 역할에 당연히 갈증이 있어요. 배우들은 거의 맨 마지막으로 했던 것과 비슷한 이미지의 역이 많이 제안이 와요. 그런 경향이 있죠. 편리성과 연기적인 편안함에 기대가면 교포 전문 배우가 될까봐 두려워요. 대중성을 얻기 어렵고, 보편화될 수 없는 역이죠. 배우는 변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자부심인데, 항상 노력하려 해요. 뭔가 조금 더 한국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발음, 연기적, 직업적인 면에서 많이 연구하고 갈증을 갖고 있죠.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해야 할까, 대중성이 있는 배우가 무엇인가, 또 남자 관객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역할이 뭔지 생각하게 돼요. 거친 배경에 들어가서 비극같은 영화를 선택해야 할까. 멜로는 한번 더 하고 싶은데 어떤 장르에 접근해야 할까.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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