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어나는 살인 하루에 1건꼴
타고난다는 유전자 천성론 VS 질투·분노 등 상황론 대립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가 살해당했다. 20대 남성 A씨는 숨진 세 모녀의 첫째딸을 상대로 지난 1월부터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며 스토킹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살인 피의자로 지목된 A씨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주일도 되지 않아 20만명 넘게 동의했다. 청와대의 공식답변과는 별도로 서울경찰청은 A씨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 소집 여부도 고려하고 있다.
'왜 살인을 할까'. 이같은 명제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쉽게 풀리지 않을 숙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한해 일어나는 살인 사건(2010~2019년)은 360건 정도다. 하루 평균 1건 꼴이다.
연도별로는 ▲2010년 438건 ▲2011년 410건 ▲2012년 402건 ▲2013년 348건 ▲2014년 366건건 ▲2015년 359건 ▲2016년 344건 ▲2017년 287건 ▲2018년 326건 ▲2019년 323건이다. 해마다 300건 이상 꾸준히 '살인'이 일어나는 셈이다.
[서울=뉴스핌] <자료=대검찰청> |
살인미수와 방조, 예비 등을 포함하면 수치는 크게 늘어난다. 살인의도를 가진 범죄까지 더하면 ▲2010년 1262건 ▲2011년 1221건 ▲2012년 1022건 ▲2013년 959건 ▲2014년 938건 ▲2015년 958건 ▲2016년 948건 ▲2017년 858건 ▲2018년 849건 ▲2019년 847건이다. 지난해인 2020년은 3분기(1~9월)까지 612건이 발생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해마다 180만건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교통범죄를 제외한 전체범죄 건수는 편차가 있지만 130만건을 넘는다. 2019년 기준으로 136만1661건이 발생했다. 살인의도를 가졌거나 실제 살인한 경우 등 살인과 관련된 사건 비율은 0.06%다.
살인은 전체 범죄 가운데 비율이 낮다고는 하지만 무게감으로 따지면 결코 간단히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범죄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살인사건이 줄어드는 추세라 해도 주목할 부분은 있다. 급격하게 수치가 줄어들거나 '0'에 수렴하지 않고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살인의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해마다 비슷하게 일어나는 살인률을 '유전적 요인'으로 보기도 한다. 살인을 비롯한 인간의 폭력성이 유전학적으로 타고난다는 주장이다.
2006년 미국 테네시주의 한 시골마을. 브래들리 왈드럽이라는 인물이 별거중인 아내와 자녀 4명을 상대로 사냥총을 발사했다. 별거 이후 아내와 사귀던 남성도 곁에 있었다. 왈드럽은 8발을 발사해 살해했다. 아내는 우여곡절 끝에 도망쳤다. 왈드럽은 1급 살인죄로 기소돼 사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왈드럽은 사형을 면했다. 미국 법정에서 배심원들이 사형을 의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 왈드럽 변호인들이 들고 나온 '사형 면책' 논거가 '유전자 변이'다. 'MAOA유전자 변이'가 폭력과 살인을 촉발시켰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MAOA유전자는 모노아민 산화효소로 불린다. 일부 과학자들은 뇌로 흘러드는 호르몬 중에 기분을 좋게 하는 세로토닌이 제대로 분해되지 않으면 오히려 기분이 나빠진다고 주장한다. MAOA유전자는 여분의 세로토닌을 청소해 평상심을 되찾게 한다. MAOA유전자가 세로토닌 수치를 제어할 수 없을 경우 감정 폭발이 일어난다. 살인자들은 MAOA 유전자가 천성적으로 이 같은 '청소'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반박도 만만치 않다. '타고난 살인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행했던 유대인 말살범죄나 지금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학살과 살인이 '유전자 변이'로 면책받아야 한다는 게 말도 안된다는 설명이다.
살인은 자신을 둘러싼 질투심 등 상황에 따라 때로는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타고난 살인기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성경 창세기에 언급된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 '카인과 아벨'은 카인이 동생 아벨을 질투에 못 이겨 사망에 이르게 했다. 양치기였던 아벨이 봉헌한 제물을 농부였던 카인이 바친 것보다 하나님이 더 반긴 점을 스스로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살인을 할까'라는 테마는 간단치 않다. 살인 범죄자와 피해자 관계(대검찰청 2019년 범죄분석)를 살펴보면 전체 23.4%가 타인이다. 그러면 나머지 76.6%는 '아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10명 가운데 8명이 '아는 사람'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고 피해를 입는다.
[서울=뉴스핌] 살인범죄자와 피해자 관계 <자료=대검찰청> |
'아는 사람' 관계에서는 친족이 전체 27.1%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이 이웃과 지인(18.0%), 애인(7.5%), 친구와 직장동료(5.8%) 등 순이다.
대검찰청 범죄 분석에는 시사점이 있다. 살인은 '감정'이 쌓여야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인간 세상'에서 '인간적 관계'가 늘 그렇듯 주요한 부분이다.
fair7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