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스라엘, '양성평등' 이유로 여성징병제 도입
한국은 양성평등에 병역자원 감소 문제도 고려해야
사회적 합의도 '아직'…국방부 "아직은 시기상조"
[서울=뉴스핌] 하수영 기자 = 오랜 시간 이어져 왔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여성징병제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남녀평등복무제'를 주장하고 나선 것을 시작으로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이 하루 만에 10만명을 넘기며 점점 불씨가 커지는 모양새다.
여성징병제 논란은 이미 세 번이나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거쳤다. 헌재는 세 번 모두 현행 병역법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여성은 지원복무만 가능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은 현행 병역법 제3조 제1항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20년 전 군 가산점 제도가 폐지된 것이 불합리하다는 주장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여기에 인구 감소로 인한 병역자원 감소 문제까지 맞물리면서 '여성징병제를 논의해 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민스크 로이터=뉴스핌] 백지현 기자 = 벨라루스 여군들이 3일(현지시간) 벨라루스 독립 기념일을 맞아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진행된 군사 퍼레이드에서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2019.07.03.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 네덜란드‧노르웨이‧스웨덴, 분단국‧분쟁국 아닌데도 여성징병제 도입 "양성평등 실현"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여성징병제를 시행 중인 국가는 총 11개국 정도다. 대표적으로는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이스라엘을 꼽을 수 있다.
이들 4개국의 공통점은 모두 '양성평등'을 이유로 여성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은 우리나라처럼 분단국가도 아니고, 중동국가들처럼 군사적 충돌이나 분쟁이 잦지도 않다. 그런데도 여성에게도 남성처럼 군 복무를 의무화해 이례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스웨덴의 여성징병제는 2010년 폐지했던 것을 2018년 부활시킨 것이다. 스웨덴 정부는 당시 "현대의 징집제도는 성별 중립적이어야 하므로 남성과 여성 양쪽 모두 포함돼야 한다"며 여성징병제를 부활시킨 이유를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여성징병제 시행 중인 국가 중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던 유일한 사례다.
이스라엘은 1948년 공식적인 국가 선언을 하기 전부터 여성을 군대에 참여시켰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명지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08년 발표한 '징병제의 여성참여' 논문에 따르면, 이스라엘 여성들은 처음에 핵심 군대조직인 'Hagana'에 '지원'하는 형태로 참여했다.
동시에 여성들은 엘리트 군사조직인 'Palmach'에도 참여했는데, 이 조직은 처음에 여성의 참여를 인정하지 않았다가 상당한 토론과 투쟁 후인 1942년 여성의 참여를 합법화했다. 다만 '전체 조직 가운데 여성의 수를 10%로 제한한다'는 조건으로였다.
어쨌든 이스라엘 역시 현재는 남녀 모두 동일한 조건으로 군대 징집 대상인데, 이스라엘도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양성평등을 이유로 여성징병제를 실시 중이다.
논문은 "이스라엘의 군대 IDF(Israel Defense Forces)는 남녀 모두 징병되는 것을 이유로 진정한 국민의 군대이고 민족의 상징 내지는 민족의 축소판으로 주장돼 왔다"며 "이를 통해 형성된 IDF의 이미지는 큰 반발 없이 대중화됐다"고 설명했다.
해군 최초 해상기동헬기 여군 정조종사 한아름 대위(학사사관 108기)가 UH-60 헬기 조종석에서 해양수호 임무 완수를 다짐하고 있다. 한 대위는 지난 2019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정조종사 평가비행을 마치고 정조종사로 정식 임명됐다. [사진=해군]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 한국, '여성징병제=양성평등 실현?' 합의 아직…'병역자원 감소 해결책 될까' 고민도 필요
한국도 여성징병제를 실시한다면 양성평등이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다만 한국은 유럽 국가들만큼 순탄하게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스라엘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진통을 겪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르웨이가 2016년 여성징병제를 도입할 때 앞장서서 목소리를 낸 건 다름 아닌 사회주의 정당 소속 여성 당원들이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성징병제 실시에 대한 여성계의 적극적인 요구가 아직은 없다.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단계에 불과하다. 즉, '여성징병제가 양성평등 실현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한국은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인구 감소로 인한 병역자원의 감소' 문제도 함께 이유가 돼야 한다. 다시 말해 '병력이 부족하니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이때 '병역자원 감소 문제를 여성의 의무복무로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난해 10월 방송된 KBS '시사기획 창'에서 이뤄진 관련 토론에서 패널로 출연한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병역자원이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여성 징병은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
최 교수는 "병역자원이 부족하면 군의 과학화로 타개할 생각을 해야 한다"며 "간부에서 지원하는 여성들에게 문호를 열어주는 것은 좋은데, 가고 싶지 않은 여성을 데려다 놓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국가적으로 보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도 일단 선을 그었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20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여성징병제뿐만 아니라 모병제, 남녀평등복무제 등 병역제도 개편은 안보상황, 군사적 효용성,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사안"이라며 "(지금 시점에) 국방부가 어떤 입장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아직 거쳐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모든 고려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결정할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suyoung07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