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조건으로 '접근매체' 전달…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행위
1·2심 벌금 300만원→대법 파기환송…"대가 인정 어려워"
[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대출업자에게 속아 자기 명의 체크카드를 타인에게 제공했더라도 그 행위가 대출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석모 씨의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청주지방법원에 환송한다"고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재판부는 "피고인은 성명 불상자로부터 대출을 받게 되면 원금 및 이자를 지급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사건 카드를 교부했다"며 "그런 행위가 대출 또는 대출의 기회라는 경제적 이익에 대응하는 대가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은 대출금 및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성명 불상자의 거짓말에 속아 카드를 교부한 사람"이라며 "대출의 대가로 접근매체를 전달한다는 인식을 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접근매체란 전자금융거래에서 거래 지시를 하거나 이용자 및 거래 내용의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으로 체크카드, 신용카드, 공인인증서, OTP 생성기 등이 해당된다.
법원에 따르면 석 씨는 향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무형의 기대이익을 대가로 약속하고 성명 불상자에게 접근매체를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석 씨는 지난 2019년 5월 16일 성명 불상자 A 씨와 전화통화를 한 후 카카오톡 문자로 희망 대출 금액, 기존 대출 금액, 직업, 월 소득 등에 관한 정보를 알려줬다.
A 씨는 석 씨에게 대출에 대한 월 이자, 원금 상환 방식, 필요한 대출 서류 등을 알려주면서 "합법적인 대출 업체가 아니다"라거나 "세금 문제 때문에 개인계좌를 사용할 수 없다" 등 이유를 들어 원금 또는 이자를 납부할 체크카드를 자신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또 매달 체크카드와 연계된 계좌에 원금 및 이자를 입금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석 씨는 이튿날 A 씨에게 대출금을 지급받을 계좌번호, 체크카드 발급은행, 비밀번호, 계약서, 차용증을 받을 주소 등을 알려준 뒤 퀵서비스 업체를 통해 A 씨에게 체크카드를 보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대가를 수수·요구·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전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제6조 제3항 제2호). 이를 위반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같은 법 제49조 제4항 제2호).
여기서 '대가'란 접근매체 전달에 대응하는 경제적 이익으로, 접근매체를 전달하는 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전달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1·2심은 석 씨의 행위를 유죄로 보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하급심 재판부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출받는 것이 어려운 상태였던 피고인이 대출받을 기회를 얻은 것은 접근매체의 대여와 대응하는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과거 대출받은 경험이 있는 점, 대출 제안이 정상적이거나 합법적인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점 등에 비춰 피고인이 경제적으로 매우 궁박한 처지에 있었다는 점만으로는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한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법은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 법원에 환송했다.
kintakunte8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