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요구 들어주되 민감한 정보는 뺄 듯
산업부 장관 미국행, 반도체 공급망 논의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미국 정부가 요구한 반도체 공급망 정보 제출 기한이 닷새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자료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요구는 큰 틀에서 수용하되, 민감한 정보는 빼 부담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우리 정부는 조만간 미국을 방문해 반도체 공급망 관련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오는 8일로 예정된 기한에 맞춰 미 정부가 요구한 관련 서류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해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이에 발 맞춰 미국 투자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미국의 요구가 지나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켰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연설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지금까지 우리 기업들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정부와 소통하며 자료를 준비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전자전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료 제출과 관련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 차분히 잘 준비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도 "내부에서 검토 중이며 정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9월 3차 반도체 공급망 회의 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사와 수요업체를 대상으로 반도체 공급·수요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해당 설문은 3대 고객 리스트와 예상 매출, 제품별 매출 비중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문조사 마감일은 오는 8일이다.
반도체업계에선 사실상 글로벌 반도체 기업 대부분이 설문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포함됐다. 미국 정부는 표면적으로 기업 자율에 맡기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사실상 강제에 가까운 조치였다.
미국의 요구가 알려지자 기밀 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반도체 공급처와 핵심 고객, 생산 계획 등은 기업 기밀 사항으로 외부에 철저히 공개되지 않는다. 기밀 사항이 자칫 경쟁사에게 까지 유출되면 최악의 경우 경쟁력 악화로 기업 존폐 위기에 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1일(현지시간) SK하이닉스를 포함해 인텔 등 복수의 기업이 협력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요구에 즉각 응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는 반도체 기업들을 향한 미국 정부의 압박으로 해석됐다.
기밀 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해외 반도체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만의 TSMC는 고객 기밀 정보를 요청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태도를 바꿔 관련 정보를 제출하겠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그간 우리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맞서 미국의 요청은 최소한 들어주되, 기업들의 자료 제출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다.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요구를 무시하기는 사실상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이달 중 미국을 방문해 지나 러만도 미 상무부 장관과 회담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자료 제출을 마치는 대로 양 국간 반도체 공급망 관련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미국에 주요 고객이 있고, 현지 생산공장도 가동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요구를 무시하기는 사실상 힘들다"며 "다만 추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정보를 전달할 것인지를 두고 정부와 소통하며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