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둔 수수료 인하, 세계 유일 금융비용 통제
적격비용 제도 개선하고 경쟁력 강화 방안 내놔야
[서울=뉴스핌] 민경하 기자 = 지나친 정부 규제를 비판하는 사례로 흔히 19세기 영국 '붉은 깃발법'을 떠올린다. 이 법은 자동차 최고속도를 3.2km/h로 제한하고 붉은 깃발을 든 기수가 자동차 앞에서 차를 선도하도록 했다. 자동차 출시로 일자리를 잃게된 마차업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자동차를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는 규제를 만든 것이다. 결국 영국은 산업혁명을 주도하고도 자동차 산업에서는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
기자의 눈에 붉은 깃발법의 본질적인 문제는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다. 정부가 정치적 판단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순간 더 큰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영국 정부가 자동차를 규제하기 보다는 마차업자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정책을 펼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경하 기자 = 2021.12.28 204mkh@newspim.com |
붉은 깃발법을 최근의 카드 수수료 문제에 빗대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대선을 앞둔 정부가 수수료 문제에 개입해 소상공인들의 불만을 줄이려고 한다는 점에서 맥락이 같다. 단지 신산업을 규제했던 붉은 깃발법과 달리 구산업을 일방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지난 23일 금융당국은 카드 가맹점 우대수수료율을 매출 구간별로 최대 0.3%p씩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업계는 이번 수수료율 조정으로 매년 약 4700억원의 수수료 수익이 더 줄어들게 됐다. 전체 가맹점의 약 96%가 수수료 인하 혜택을 보게됐다.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는 금융당국이 카드사의 자금조달·마케팅·위험관리·마케팅 비용 등을 계산해 적격비용을 산출하고 초과분을 수수료 인하에 반영하는 제도다. 당국은 지난 2012년부터 세 차례에 거쳐 연 2조4000억원의 수수료 부담을 경감하도록 했다.
전 세계에서 카드수수료율을 직접 관리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 카드사들이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용을 줄이면 당국은 수익성이 여전하다고 다시 수수료율을 인하한다. 이미 카드업계는 가맹점 수수료 수익보다 결제 원가가 더 높아 결제가 많아질 수록 손해가 나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 사업을 장려하겠다 했지만 실제는 다르다. 지난 2016년 이후 카드업계 부수업무 인가 수는 고작 17건에 그친다. 같은 기간 보험업계가 101건임을 감안하면 차이가 크다. 금융당국은 그저 '여전업과의 관련성'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들이대며 카드사가 추진하는 부수업무 대부분을 불허하고 있다.
갈 곳 없는 카드사들은 이번에도 비용 줄이기에 총력을 다할 전망이다. 벌써부터 몇몇 카드사들은 희망퇴직을 다시 받기 시작했다. 혜택이 많은 '혜자카드'들은 얼마 가지 않아 단종되고 있고 다른 카드소비자 혜택들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카드업계는 빅테크 업계와의 '동일기능 동일규제'를 외친다. 이미 조정된 수수료율까지 받아들일테니 이제부터라도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총파업을 외쳤던 카드노조가 마지못해 결정을 유예한 것도 당국이 제도개선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번 수수료 인하 결정은 '가맹점 살리기'보다는 '카드사 죽이기'에 가깝다. 금융당국의 과도한 시장개입에 따른 부작용은 결국 금융소비자에게 온다.
마차를 일방적으로 규제하기 보다는 자동차와 나란히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당국이 업계와 단순히 수수료 문제만 논하지 않고 경쟁력 강화방안도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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