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 9채 전소, 다닥다닥 붙어 화재에 취약
안전펜스 설치 시도에 성동구청-상인들 야밤 충돌
"무허가 점포 철거해주세요" 화재 후 민원글 이어져
[서울=뉴스핌] 강주희 기자 = "불나서 살림살이가 다 도망갔어. 사람들이 불났다고, 빨리 나오라고 해서 나왔는데 우리 가게까지 불이 번지는거야. 나는 막 울면서 '어떡해, 어떡해' 했고…"
서울 성동구 마장동 먹자골목에서 만난 상인 이모(60) 씨는 화마가 휩쓸고 간 가게를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29일 소방당국과 상인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전 11시 30분 먹자골목 한 식당에서 시작된 불은 이씨의 가게를 포함해 9개의 점포를 삽시간에 집어삼켰다. 이 불로 24개의 점포가 피해를 입었고 주택 1채도 완전히 불에 타 이재민이 발생했다.
불은 2시간여 만에 꺼졌지만 피해 흔적은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불길이 지나간 샌드위치 패널 지붕들은 폭격을 당한 듯 주저 앉았고, 출입문과 외벽은 검게 그을린 채 무너지거나 앙상하게 휘어져 있었다. 불길에 녹은 전선은 여기저기 끊어져 거미줄처럼 천장에 뒤엉켜 매달렸다.
이씨의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불에 탄 차양, 잿가루를 뒤집어 쓴 냉장고와 식기, 훤히 드러난 건물터 등 예외없이 화마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가게를 바라보던 이씨는 이내 몸서리를 쳤다. 그러면서 "30년 넘게 여기서 먹고 살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끔찍하고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씨의 점포를 마주한 가게들은 그나마 화재를 피해 영업 중이다. 그러나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은 오가는 손님 없이 매우 한산했다.
전날인 28일 오후 한 고깃집에는 손님 두 명만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먹자골목 인근에 정육점을 운영하는 신모(49) 씨는 "코로나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인데 화재 후 모든 것이 달라지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강주희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 마장동 먹자골목. 지난 19일 오전 발생한 화재로 점포 9채가 전소됐다. 지난 25일 상인들과 성동구청 용역 직원들 간 충돌 후 화재가 발생한 가게 앞에는 출입금지 테이프와 경고문을 붙여졌다. 2022.03.29 filter@newspim.com |
◆ 복구커녕… 한밤에 물리적 충돌까지
화마는 지나갔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지난 25일 오후 10시 먹자골목에서는 상인들과 성동구청 용역 직원들이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화재 후 상인들은 주민 안전과 통행을 위해 주변에 자체적으로 펜스를 설치했는데, 이를 구청 측이 철거하려고 하자 상인들이 반발에 나선 것이다.
상인들은 그동안 대체 부지 이전을 요구해 온 구청 측이 펜스 철거를 빌미로 가게까지 철거할 것이라며 몸으로 용역직원과 중장비를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상인 두명은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새벽까지 대치가 이어지자 구청 측은 상인들이 설치한 펜스에 추가로 덧대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또 화재가 발생한 가게마다 출입금지 테이프와 경고문을 붙이고, 현장 출입을 막기 위한 일부 용역직원만 남기고 철수했다. 성동구청장 명의로 부착된 경고문에는 '무단점유·사용 및 펜스 훼손시 국유재산법 제82조 및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제99조 형법 제366조에 의해 고발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마장동 먹자골목은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정부가 마장동 소 도축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주민민들을 이주시킨 국공유지다. 이후 무허가 건물들이 들어서며 상권이 형성됐고 30년 넘게 이어져 왔다. 이곳에 자리잡은 건물 대부분은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져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청 측은 화재 이전부터 대체 부지 이전을 전제로 무허가 건물 철거를 설득해왔지만 상인들은 "터전"이라며 떠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상인 중 33명은 먹자골목에 전입신고를 하고 거주하고 있다. 서울시 행정대집행 인권매뉴얼에 따라 거주자들의 동의가 없는 한 강제 철거는 불가능하며 자발권 퇴거 권고만 가능하다.
◆ 먹자골목 철거 민원글 화재 후 늘어나
화재 발생 후 먹자골목 점포를 철거해달라는 민원도 잇따르고 있다. 성동구 홈페이지의 '구청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에 올라온 먹자골목 철거 요구 민원은 이날 기준 42건에 달한다. 특히 이중 절반은 화재가 발생한 지난 19일 이후 제기된 민원이다.
한 민원인은 "화재 사고에도 불구하고 여러 업장들이 LPG가스통과 화로들을 사람들이 다니는 골목에 방치한 채 여전히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러한 대형 화재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공유지 불법 점유 상태를 해소하고 불법 건축물들을 모두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스핌] 강주희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 마장동 먹자골목의 모습. 지난 19일 오전 발생한 화재로 점포 9채가 전소됐다. 2022.03.29 filter@newspim.com |
상인과 주민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맡은 성동구는 고심 중이다. 구청 측은 상인들과 이전 문제를 합의할 경우 해당 부지에 공공시설물을 건립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22일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했고 같은 달 25일에는 상인들과 대화에 나섰다. 전날에는 먹자골목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그러나 상인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며 구청과 대립하고 있다. 김종인 마장동 먹자골목 상인회장은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구청에서 노력은 하겠지만 (주민들 입장은) 그게 아니지 않느냐"며 "아파트에서 공원을 만들어달라 등 여러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아는데 저희 입장은 그저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싶은 것 뿐"이라고 말했다.
filte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