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숙 한국재도전중소기업협회 회장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가 중소벤처기업부를 해체해 산업부와 과학기술부로 기능을 이관할 것이라는 관측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과 벤처스타트업 육성 기능을 쪼개 각각 산업부와 과학기술부에 이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육성 정책이 다르고,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상황에서 한 부처에서 관리하게 되면 당연히 힘이 센 대기업 중심으로 정책이 반영될 수 밖에 없다. 또한 기술 우수 기업으로 자리잡기 전까지 중소기업 창업의 전반적인 지원, 육성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과학기술부에서 창업 전반을 관장한다는 건 심각한 정책 엇박자를 초래할 수 있다.
과거 인수위 때는 중소기업 정책을 대변할 인사가 포함돼 왔는데 이번에는 중소기업 정책을 대변할 인사가 아무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할 때부터 예견된 일인지 모른다. 지난 대선만 해도 여야 모두 중소벤처기업부가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로 애기했건만 격상 5년만에 부처를 해체시키겠다니, 여성가족부는 잘못해서 해체하고 중소벤처기업부는 잘해서 해체하겠다는 것인가.
최근 7년간 벤처투자기업 5556곳의 가치가 276조원를 기록하고 몇 개 기업에 불과하던 유니콘기업의 가능성이 243개로 예측되고 있다. 대기업보다 벤처기업이 일자리 창출에 더 기여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수치로 입증된 상황이고 세계적인 주류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가능성있는 중소기업을 더 잘 되게 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이다. 다만 창업 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창업만 독려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해야지, 전 부처에 산재돼 있는 중소기업의 현안을 통합적으로 연계해서 규제 개선에 앞장서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부처 쪼개기를 하고 있다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못하다.
코로나19로 무너진 소·상공인의 재기 지원책 또한 인수위의 코로나19비상대응특위에서 긴급한 현안으로 다루고 있지만 범부처 통합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번 사업에 실패했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재도전의 생태계 조성은 영역별로 다른 게 아니다.
그런데도 산업부와 과학기술부로 기능을 이관해 중소벤처기업부를 해체하겠다는 생각과 똑같이, 재기의 영역과 해결 방안이 자영업자, 청년 스타트업, 중소기업가, 벤처기업인 별로 따로 부처를 지정하고 별도로 운영된다면 실효성은 고사하고 공통 분모의 문제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제대로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희숙 재도전중소기업협회 회장. [재도전중소기업협회 제공] |
지난 2월 4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당시 안철수 대선후보와 중소기업 미래비전 프로젝트 간담회를 가졌을 때 일이다. 안 후보에게 다음과 같이 재도전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건의했다.
"모든 재기는 '실패한 경험'이라는 콘텐츠가 가장 큰 자산입니다. 시장을 알게 될 때쯤 실패하는데 시장 진입 실패의 경험이 실제 자산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술력과 사업성을 가진 성실한 재도전 기업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업 실패로 신용이 문제가 된 사람들의 잘못된 신용 기록을 평생 움켜쥐고만 있지, 빚을 갚을 수 있는 시스템이 설계돼 있지 않습니다.
민간 사업재생관리협회를 통해 '턴어라운드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미국처럼 민·관 합동 재도전통합지원센터를 구축해 실효성 있는 재도전, 재창업 정책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보다 다양한 창업 안전망을 위해, 민·관 합동 재도전 통합 지원센터 구축, 실제 재창업 중소기업에게 지원이 될 수 있는 재기지원펀드의 조성 및 중소기업 경영 활동 과정에서부터 실패가 예방될 수 있는 재도전 정책의 혁신을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그 자리에서 안 후보는 다음과 같이 의미있는 답변을 했다.
"후보 시절 약속했던 공약이 대통령이 된 뒤 왜 지켜지지 않을까 봤더니 관심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관심있는 영역은 의지를 갖고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안 철수 인수위원장은 인수위원장으로서 중소기업 정책이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은 토대는 제공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중소기업가에 대한 관심 정도가 아니라, 국가적인 큰 기여를 한 중소기업가 출신으로 중소기업인들의 피, 눈물을 너무나 잘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류가 지금의 성공적 기반을 이룬 배경엔 고 김대중 대통령이 있다. 정부 주도의 영화진흥공사에서 민간 주도의 영화진흥위원회로 영화정책 콘트롤타워를 바꾸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기조 아래 한국영화산업에서부터 콘텐츠 산업의 본격 육성 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 2의 벤처 붐이 확산되는 정말 중요한 시점에 안 철수 인수위원장이 K-창업의 기반을 다질 큰 족적을 남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유희숙 재도전중소기업협회장 = 대한민국 최초 여성 단독 영화제작자라는 타이틀을 지녔다. 제작자로 참여한 영화로 △채널 식스나인 △블랙잭 △파란대문 △노랑머리 1·2 △하얀 방이 있다. 김기덕 감독 연출의 파란대문은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될 정도로 세간에 화제를 뿌렸다. 유 회장은 첫 위성 DMB 영화('KILL LOVE'), 한국 상업영화 최초의 가상현실(AR) 영화 프리퀄('Fortune Diary') 제작 기록도 갖고 있다.
탄탄대로로 모두 성공했던 것은 아니며 한때 금융권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등 파산과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2015년 2대 재도전중소기업협회회장에 올라 회원 300개사의 협회를 지금껏 이끌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업을 시작해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자신의 경험담과 재도전 정책에 대한 제안을 담은 책 '두 번째 국가'를 출간했다. 부제로 '국민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 국가는 필요 없습니다'라는 내용을 달아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