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원자재 해외 의존도↑...에너지 안보 위협
[서울=뉴스핌] 신수용 기자 =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소위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해관계자 따라 다른 국가의 주요 사업의 행방을 좌우하는 데 정부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얼마전 만난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해 묻자 이같이 답했다.
신수용 산업부 기자 |
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의 핵심은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전기차 요건이다.
법안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핵심 광물의 40%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가공돼야 한다. 또 배터리 부품도 북미 지역에서 조립되거나 제조돼야 하는데 내년까지 50%, 이후 점차 비중을 늘려야 한다.
중국발 요소수 사태가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국내 업체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자재 생산과 가공 등 여러 생산 공정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서 리튬 등 배터리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90%에 가깝다.
원자재 공급으로 인한 생산 차질은 비단 배터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반복적인 현상이다. 지난해 중국이 요소수 수출을 금지하면서 요소수 품귀 현상이 발생했다. 요소수는 경유차나 화물차에 필수품으로 당시 연말 대목을 앞두고 있어 물류대란으로 번질 위험이 있는데, 요소수 전량이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리자 불화수소 등 반도체 3대 핵심소재 수출을 규제하면서 반도체 생산에 비상이 걸렸다.
IRA로 중국 배터리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에 장애가 발생한 것은 한국 기업 입장에선 호재로 작용하지만, 원재료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내 배터리 기업도 반사이익을 얻기 힘들다.
배터리 업계는 원자재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것은 물론 장기계약과 지분투자, 전략적 파트너십 등을 통해 공급망 안정화에 공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핵심 원자재지만 수입에 의존하는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을 추출해 새 배터리에 사용하는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개발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기업이 반복해서 겪는 원자재 공급망 불안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배터리와 반도체는 국가 경제를 좌우할 핵심 사업 중 하나다. 중국은 원자재 공급망 안정을 국가적 사안으로 여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핵심 비축 광물을 지정하고 자원외교를 통해 해외 자원을 확보했다.
중국 정부의 노력으로 중국의 핵심 광물자원의 생산·공급망은 80~90%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의 핵심 광물자원의 매장량은 10% 미만이지만 정부가 나서서 원자재 공급 안정화를 꾀했다. 중국 CATL이 미·중 무역분쟁 속에서도 세계 1위 배터리 업체로 승승장구하는 이유다.
당장 눈에 띄는 불똥만 끄려 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실질적으로 광물 등 핵심 원자재 공급망 확보에 나서 제2의 요소수·반도체 소재 대란에 대비해야 할 때다.
aaa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