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범죄에 연루돼 관계자 처벌받아도 유령법인은 `멀쩡`
스스로 해산하거나 법원의 해산 명령 없으면 존속
검찰, 자체 조사 통해 유령법인 해산명령 청구하기도
전문가 "단발성 아닌 상시적인 모니터링 체계 필요"
[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 = 대포통장을 유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령법인'을 세운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음에도 불구, 해당 법인의 등기는 버젓이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령법인일지라도 스스로 해산하거나 법원의 해산 명령이 없으면 존속하게 돼 추가 범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부장판사 오상용)은 지난 5일 공전자기록 등 불실기재, 불실기재 공전자기록 등 행사,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이모(27) 씨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로고[사진=뉴스핌DB] 2022.03.17 obliviate12@newspim.com |
이씨는 2020년 5월 '법인을 설립하고 법인 명의로 은행계좌를 개설한 후 직불카드, OTP 등의 접근매체를 넘겨주면 신용등급을 올려서 대출을 실행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같은 해 6월 유령법인을 설립하고, 이 법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성명불상자에게 넘겨준 혐의를 받는다.
이씨는 자본금 2000만원을 납입하고 사무실을 개설한 것처럼 꾸며 유한회사 A를 설립했다. 이씨가 넘겨준 A법인의 대포통장은 사기 범죄에 이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대가를 약속받고 전자금융거래에 사용되는 접근매체인 OTP카드, 계좌의 통장을 전달한 것으로서 금융거래의 신뢰성을 저해하고 타인 명의의 계좌를 이용한 범죄 피해를 양산하는 행위"라면서도 "범행을 모두 인정하면서 반성하는 점, 벌금형을 초과하는 전과가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 등기부 등본을 살펴 보면 이씨가 설립한 A법인은 여전히 '살아있는 등기'로 표시된다. 사기 범죄에 법인 명의의 계좌가 이용된 데다 이씨의 혐의가 인정됐는데도 유령법인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씨가 설립한 유령법인으로 추정되는 유한회사 두 곳도 추가로 확인됐다. 이들 법인은 위치도 업종도 제각각이었다. A법인은 경기 안양시에 본점을 둔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였다면 B법인은 경기 고양시에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다. C법인은 본점이 인천에 있는 의류도소매업 회사다.
그러나 세 법인은 2000만원이라는 동일한 자본금으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A법인 2020년 6월 10일, B법인 2020년 5월 8일, C법인 2020년 5월 20일에 설립됐다.
이 같은 유령법인들은 관련자들이 기소되거나 법원에서 유죄 선고가 나와도 스스로 해산하거나 법원의 해산 명령이 없으면 존속된다.
검찰에 따르면 유령법인을 재차 범죄에 이용하는 사례들도 존재한다. 이미 대포통장을 유통한 혐의로 관계자가 구속된 후에도 같은 법인을 활용해 추가로 대포통장을 개설하는 식이다. 두 차례나 범죄에 연루됐는데도 해당 법인은 해산되지 않는다. 서울북부지검은 지난해 5월 이 같은 법인을 비롯해 유령법인 68개를 찾아내 전국 13개 법원에 해산명령을 청구했다.
이처럼 현재는 지방검찰청 차원에서 범죄에 재차 악용될 가능성이 큰 유령법인에 대해 검찰이 해산명령을 청구하고 있다. 상법상 검사는 회사 설립 목적이 불법이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영업하지 않는 경우 법원에 회사 해산을 청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단발성이 아닌 상시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이스피싱도 그렇고 사기 범죄는 수사기관, 금융감독원,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기관들이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다"며 "유령법인 같은 경우는 상시 모니터링하고 해산을 해야 하는데, 관리가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점조직화된 사기 조직들은 계속해서 대포통장을 만들고 사기 범죄에 이용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상시적으로 유령법인을 모니터링하고 상습범에 한해서는 법인을 함부로 못 만들게 하는 등의 조처가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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