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늦어도 내달 초 공개
중대재해법 9개월 만…모호성 논란에 가이드 발표
중대재해법만큼 계획 수립 빨라…내용 실효성 의문
[세종=뉴스핌] 이수영 기자 =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잘해야 한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열심히 하고 있으니 눈에 띄기 위해선 잘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처음엔 참 불편한 말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의미를 깨닫고 있다.
이수영 경제부 기자 |
보통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그에 대한 열정에서 시작한다. 하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비롯된 계획은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마련이다.
이는 마음가짐이 주는 좋은 영향력이지만, 열정과 마음가짐은 목표 달성에 있어 서로 상충하곤 한다. 동료 선후배 기자 중 마감 시간 독촉으로 잘 쓸 수 있었던 기사도 힘 빠지게 나가는 경우를 여럿 봤다. 잘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바로 이런 경우다.
이러한 부담일까. 최근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고용노동부의 행보도 촉박하기 그지없다. 입법까지 1년도 채 안 걸린 중대재해법을 시행 1년도 안 돼 재정비에 나섰다. 고용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가 임박했으나 벌써부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중대재해법은 사고 발생 시 기업최고경영자(CEO)에게 안전보건 관리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이다. 전 정부와 여당은 올해 1월 27일부터 시행할 수 있도록 지난해 1월 8일 중대재해법을 제정·통과시켰다. 시행까지 기간이 짧았던 만큼 중대재해법 등장 이후 현장은 혼선을 빚었다. 예고된 수순이다.
특히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에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할지, 사고 책임을 최고안전책임자(CSO)가 짊어져야 할지 등을 두고 기업들은 모호성을 들이대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라고 독촉했다. 이미 산안법에도 나와 있던 내용이지만 기업들의 주장은 대체로 그랬다.
통상 새로운 법과 제도, 규칙이 생기면 빠져나가는 구멍도 생긴다. 중대재해법 역시 CSO를 선임해 CEO 처벌을 면하려는 꼼수가 경영계에서 자주 포착됐다. 중대재해법을 통해 노동자 생명 보호를 위해 힘쓰랬더니 기업들은 처벌을 피할 생각부터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중대재해법은 취지와 달리 역행 중이다. 올해 1월 27일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지난달 15일까지 상시근로자 50인 이상·건설 규모 50억원 이상인 기업 일터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망사고는 146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148건)과 비교하면 겨우 2건(1.4%) 줄었다. 또 사망자 수는 157명으로 전년(154명) 대비 오히려 3명(1.9%) 늘었다. 시작부터 입법 취지와 다르게 흘러가는 모습에 탄식만 나온다.
이런 가운데 고용부가 이달 말, 늦어도 다음 달 초에 발표 예정인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도 섣불렀던 중대재해법 입법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애초 독촉으로 인해 9개월도 안 돼 나오는 대책안이다.
그동안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대내외적으로 10월 중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이달 초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재언급하며 약속을 상기시켰다. 의도는 좋았다. 그 결과 고용부는 지금 중대재해 감축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나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열심히 잘할 수 있도록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간 안에 완수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잘될 일도 그르칠 수 있다.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로드맵이 다른 모호성을 데려오지 않으려면 열심히 말고,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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