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 = 10대 때는 세월호, 20대 때는 이태원 참사를 겪은 세대.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대부분인 청년층은 결정적 순간에 국가의 부재를 체감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 따르기보단 각자도생을 택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던 이들은, 이번엔 주최가 없는 행사에선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들에게 국가는 책임지는 권력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국가는 왜 컨트롤타워로서 작동하지 않았는지 자문하기보다 우연히 발생한 개인의 사고로 명명했다. 지난 1일 한덕수 국무총리의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이태원 참사는 '사고'로 표현됐다. '한덕수 국무총리 이태원 사고 외신 브리핑'이라고 걸린 간담회 화면에 이태원 참사(Itaewon Disaster)가 아닌 사고를 뜻하는 'Incident'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이다. 세월호를 '해양 교통사고'쯤으로 치부하던 8년 전이 겹쳐 보이는 까닭이다.
지혜진 사회부 기자 |
국가는 머리를 숙이기보다 아래를 향해 호통치는 방식을 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경찰을 향해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고 질책했다. 행정안전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행안부는 경찰과 소방을 지휘한다. 재난안전법 제6조는 행안부 장관이 국가 및 지자체가 행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하고 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대통령의 말을 두고 '책임전가'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는 사이 참사 희생자들은 안전 시스템이 부재한 죄책감은 물론, 자신들의 비극이 정쟁화하는 고통까지 떠안았다. 인터넷 매체 '민들레'와 '시민언론 더탐사'가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자 이에 대한 고발이 줄을 이었다. "희생자들을 익명의 그늘 속에 계속 묻히게 함으로써 파장을 축소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공학"이라는 민들레·더탐사 측의 의도와 달리 점점 더 애도보단 정치권 공방으로 집중되는 모습이다.
어쩌면 각자도생이 더 익숙한 세대에게 이번 참사는 국가와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차 상기시켜주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를 얼마나 불신하는지와는 별개로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을 돌보고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게 과연 나라인지, 책임질 권력은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 이번 참사 끝엔 국가의 책임이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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