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 성폭력처벌법상 장애인준강간 혐의 무죄 확정
"정신적 장애로 항거불능이나 인식 못했을 가능성"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지적장애인인 성폭행 피해자가 사건 당시 항거불능 상태였는지 여부는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장애'를 가졌는지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장애의 정도 외에도 피고인과의 관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장애인준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70대 남성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20.12.07 pangbin@newspim.com |
A씨는 2019년 2월 경 무료급식소에서 알게 된 40대 여성 B씨에게 '우리 집에 가서 청소 좀 하자'라고 말하며 자신의 주거지로 데려간 뒤 5차례에 걸쳐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지적장애 3급 장애인인 B씨가 당시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었고 A씨가 이를 이용해 간음했다며 성폭력처벌법상 장애인준강간 혐의로 기소했다.
1심은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8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당시 지적장애로 인해 의사소통 능력이나 사회적인 생활 능력, 일상생활에서의 문제해결 능력이나 판단력 등이 부족한 상태였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거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에 대해 저항 또는 거부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있었다"며 "피고인 또한 피해자가 이러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피해자가 당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지적장애로 인해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었다는 점과 피고인이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1심 판단을 뒤집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피고인이 각 행위 당시 피해자에게 위협적인 행위를 한 정황을 찾아볼 수 없고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친분·호감 내지는 신뢰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가 피고인의 성적 행동에 대해 일부 거부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기도 한 점을 더해 보면 피해자의 정신적 장애에 다른 원인들이 결합해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피해자는 피고인과의 관계에서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며 항소심과 일부 다른 판단을 하면서도 A씨에게 고의를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은 B씨가 지능지수에 비해 사회지수가 매우 낮아 대인관계 및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했고 지인에게 울면서 이야기할 정도로 A씨와의 성행위를 원하지 않았음에도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며 B씨가 사건 당시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표현·행사하지 못하는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상태에 있었다고 봤다.
다만 A씨가 사건 발생 1년 전 무렵부터 B씨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용돈을 주거나 먹을 것을 사주는 등 알고 지낸 점, 사건 당일에도 청소를 시키고 B씨에게 먹을 것이나 용돈을 주는 등 호의적인 행위를 한 점 등을 근거로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장애로 인해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었음을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행 성폭력처벌법 제6조 4항의 '정신적인 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장애로 제한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 판결"이라며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였는지 여부는 피고인과의 관계에서 그 당시 상황을 기준으로 장애의 정도와 함께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