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설경구가 완전히 새로운 스파이 액션 추리영화 '유령'에서 또 한번의 연기열전을 펼쳤다.
설경구는 1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유령' 개봉기념 인터뷰에서 극중 무라야마 쥰지 역을 연기한 소감을 말했다. 코로나 때 진행된 촬영 이후 드디어 영화를 선보이며 그는 기존의 작품들과 또 다른 도전을 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유령'에 출연한 배우 설경구 [사진=CJ ENM] 2023.01.12 jyyang@newspim.com |
"감독님이 일제 강점기를 다룬 시나리오를 장르로 접근하고 싶다고 하셨죠. 많은 그 시대의 영화가 있었지만 색감이나 결이 다르게 만들고 싶어했어요. 그때를 제가 연기해보진 않았거든요. 품마다 모습이 바뀔 수는 없지만 당시 착장을 하면 조금 캐릭터 만드는데 조금 도움이 되려나 싶긴 했죠. 영화의 색감이나 중간에 바뀌는 장르도 그렇고 독특하긴 했어요."
설경구가 연기한 쥰지는 극중 '유령'의 정체를 흩뜨리는 역할을 한다. 일본 무인 명문가 출신이지만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 쥰지는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해 카이토(박해수)의 수사에 혼선을 준다. 관객들은 자연히 '과연 누가 유령일까' 하고 흥미진진하게 관전하게 된다.
"저는 유령으로 계속 연기했어요. 모든 배우들이 기능적인 역할이 있지만 쥰지가 혼선을 주는 역할이었어요. 그러면서도 너무 딱 드러나면 재미가 없으니 알듯말듯하게 해야 했죠. 정확하게 딱 꼭지점을 주지 않고 의심을 받게끔 하는 게 목적이었어요. 나오는 배역 중 가장 기능적으로 접근이 필요했죠."
쥰지는 항일 운동의 한가운데에 선 흑색단을 끊임없이 저격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의도치않게 그들을 돕기도 한다.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자신의 내면을 달래려 더 크고 요란하게 고군분투한다. 설경구는 그런 쥰지의 모습에 가끔은 연민을 느꼈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유령'에 출연한 배우 설경구 [사진=CJ ENM] 2023.01.12 jyyang@newspim.com |
"쥰지가 크게 메시지를 주는 인물은 아니죠. 그러나 중요하지 않은 역도 아니에요. 마지막에 던지는 잔인한 대사들이 평소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했어요. 자신 안에 있는 조선이란 단어를 지우고 싶다는 것에 끊임없이 집중하고 집착하는 거죠. 제가 무슨 메시지를 던지려 했다면 감독님이 반대했을 것 같고 이상해졌을 수도 있다고 봐요. 쥰지의 감정은 한 가지론 설명이 어렵죠. 엄마를 저주하진 않았을 거예요. 치욕이나 분노, 무엇이든 하나로 표현하거나 나열하긴 어려워요. 더없이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 더 자극적인 대사로 스스로를 달래는 느낌이에요."
설경구의 지난 작품 '역도산' 이후에 일본어 대사가 많은 역할은 처음이다. 설경구는 "더 많았는데 줄여달라고 말씀드렸다"면서 한국 관객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음을 언급했다. 일본인 경위대장 카이토 역의 박해수는 아예 전 대사가 일본어인 수준이었다.
"일본어만 난무하는 게 썩 좋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한국사람들이 자막을 보면서 영화를 봐야 한다는 게요 박해수씨는 줄일 수가 없어서 최대한 많이 줄여달라고 요청했고 다행히 받아들여주셨죠. 박해수씨는 사실 불가능을 해낸 거죠. 원래 일본 배우를 섭외하려다 코로나 때문에 안되고, 2주 전에 갑자기 책이 갔어요. 저한테도 전화해서 말로는 못할 것 같다고 하는데 들어보면 하고 싶어해요. 하고 싶다는 얘기로 들려서 감독님을 만나보라고 했죠. 박해수씨가 카이토 역을 정말 좋아했고 우리도 첫 촬영 때 저절로 박수를 쳤던 기억이 나요."
설경구가 주연으로 참여했지만, '유령'은 알고보면 여성 서사가 돋보이는 여성 위주의 액션영화다. 그는 "굉장히 반가웠다"면서 이 영화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을 어필했다. 국내 영화계 전체를 보더라도, '유령' 같은 영화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얘기하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유령'에 출연한 배우 설경구 [사진=CJ ENM] 2023.01.12 jyyang@newspim.com |
"그 시대에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냈죠. 이걸 주 테마로 삼았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고 보면서 통쾌하기도 했어요. 총으로 난사도 하고요. 더 생기는 게 좋지 않나 싶어요. 브로맨스만 너무 많지 않나요. 우연찮게 제 또 다른 작품 길복순도 그렇고요. 굉장히 좋은 현상이고 바람직하다고 봐요. 더 많이 나와도 되고 더 강렬한 영화도 좋아요. 여성들의 치열한 액션과 감정 서사가 낭만적이고 되게 아름다웠죠. 이솜씨도 굉장히 강렬했고 마지막 후반에 이주영씨도요. 이하늬가 열고 박소담이 닫았다는데 저는 이솜이 열고 이주영이 닫았다 생각해요."
2022년 데뷔 30년을 맞은 설경구는 이제 국내 영화계의 든든한 기둥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그도 매너리즘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영화 경력 초반부터 이어온 줄넘기처럼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해오길 멈추지 않았다. 올해도 2편 이상의 영화를 더 선보일 예정이라는 그의 든든한 등 뒤로 한국 영화와 영화계의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잠시나마 매너리즘처럼 '그냥 하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도 있었어요. 절실함이 조금 떨어졌었죠. 촬영 끝나면 그냥 늘 작품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어느 순간 추락할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그때 '불한당'으로 구제를, 구원을 살짝 받으면서 절실하다고까지는 모르겠는데 소중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다시 하게 됐어요. 감사함이 생겼죠. '자산어보' 찍으면서 섬에서 다같이 지내면서 현장의 감사함을 생생하게 느꼈어요. 이정은씨한테 저도 모르게 '행복하지 않냐'고 물었죠. 현장에서 숨쉰다는 게 이젠 절실함보단 감사함이에요. 절실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럼 오버할 것 같거든요."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