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국 참여 없이 강대국이 일방적으로 영토 분할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뮌헨 협정과 독·소 불가침 조약, 그리고 얄타 회담….
유럽인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알래스카 회담'을 앞두고 과거 유럽을 어둠과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강대국 끼리의 영토 분할을 되새기며 과거의 실수와 아픔을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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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키우 로이터=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 115 독립 기계화여단의 이동식 방공 부대 소속 군인이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지역에서 러시아 무인기를 향해 브라우닝 기관총을 발사하고 있다. 2025.06.02. hjang67@newspim.com |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독일 등에서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인권 운동가들은 14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공동 기고문을 내고 "알래스카 회담이 1938년 뮌헨 협정, 1945년의 얄타 회담을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알래스카 회담을 깊은 우려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며 "이 만남이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제 안보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합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미·러 회담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불법 점거와 1991년 설정된 국경선을 무력으로 재편하는 협정의 체결로 연결될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직접적인 참여와 동의 없이는 어떠한 합의도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와 푸틴 정권에 대한 압박과 제재 강화도 요구했다.
이들은 "(이번 회담이) 푸틴 정권에 대한 제재 완화 또는 해제 가능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며 "이는 푸틴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푸틴 정권의 잔혹한 침략 이후 불법 점령을 정당화하는 어떠한 결정도 인정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침략이 완전히 중단되고 점령지가 해방되고 모든 정치범과 민간인, 군인 포로가 석방되고 책임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을 때까지 러시아 정권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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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네츠크 로이터=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 최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 제43독립포병여단 소속 군인이 2S7 피온 자주포를 발사하고 있다. 2025.06.02. ihjang67@newspim.com |
이들이 언급한 뮌헨 협정과 얄타 회담은 당사자들의 참여 없이 강대국들이 일방적으로 국경선을 새로 긋고 영토를 주고 받은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1938년 9월 말 독일 뮌헨에서 열린 회담에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이탈리아 베니토 무솔리니, 영국 네빌 체임벌린 총리, 프랑스 에두아르 달라디에 총리 등이 참석했다.
히틀러는 독일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북서부 지역 주데텐란트 지역의 양도를 요구했고, 영국과 프랑스 지도자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당사국인 체코슬로바키아는 회담에 초대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회담은 히틀러의 침략 야욕을 억제하지 못했고, 이후 유럽 전 대륙은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1945년 2월 크림반도의 얄탸에서 열린 회담에서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조지프 스탈린 소련 지도자가 만나 독일 항복 이후 분할 점령에 합의했다.
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영향권 인정과 폴란드에 친소 정부 허용, 독일 패망 후 소련의 일본 참전, 국제연합(UN) 창설 등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한편 북유럽 발트 3국은 1939년 8월 소련의 유리 몰로토프 외무장관과 독일의 외르크 폰 리벤트로프 외무장관 사이에 체결된 독·소 불가침 조약의 악몽을 떠올렸다.
소련과 독일은 이 조약을 통해 서로에 대한 불가침을 약속하면서 폴란드를 두 나라가 양분해 나눠 갖고, 발트 3국을 소련 영향권에 두기로 합의했다. 핀란드와 루마니아 일부에 대한 소련의 영향권도 인정했다.
이 조약으로 동쪽의 안정화를 달성한 히틀러는 이후 본격적으로 유럽 본토에 대한 공격에 돌입했다. 발트 3국은 소련에 완전히 종속됐다.
발트 3국의 외무장관들은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공동 기고문을 내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점령은 절대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러시아의 점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발트 3국의 과거 역사가 보여준다"며 "러시아의 점령은 일시적일 수 없으며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 자유, 그리고 삶 그 자체의 파괴로 연결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