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연극 '빵야'가 아픈 근현대사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고 있는 장총 한 자루의 이야기를 무대에 펼쳐낸다.
연극 '빵야'가 현재 엘지아트센터 U+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빵야'는 총을 쏘는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로, 극중 주인공이 되는 낡은 장총의 이름이기도 하다. '빵야'라는 총성과 함께 시작되는 장총의 여정과 그 사이에 녹아든 민족의 역사와 전쟁, 아픔을 들여다본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연극 '빵야'의 한 장면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2023.02.16 jyyang@newspim.com |
◆ 무명 드라마 작가가 찾아낸 매력적인 소재 '장총'의 이야기
'빵야'는 무명 드라마 작가 나나(정운선)가 소품창고에서 발견한 낡은 장총 한 자루에 얽힌 이야기를 드라마 대본으로 풀어내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사람으로 의인화된 장총 역의 빵야(문태유)는 무기로 태어나 계속해서 새로운 주인을 만났던 순간들을 회상한다. 정의와 불의를 오가면서도 늘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했던 장총의 이야기엔 우리 민족의 아픈 근현대사가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나나(정운선)은 긴 무명생활로 생계가 급하지만 흥행 드라마를 쓰고 싶은 욕망과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 사이 갈등한다. 너무도 간절한 '좋은 소재'를 찾아 헤매던 중 장총을 만나지만 의미있는 이야기와 팔리는 이야기의 갭은 크다. 정운선은 계속해서 현실에 부딪히는 드라마 작가로서, 또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는 창작자로서 고민을 현실감있게 표현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연극 '빵야'의 한 장면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2023.02.16 jyyang@newspim.com |
창총 빵야 역의 문태유는 낡고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다. 찢기고 떨어져나간 곳엔 다른 부품의 쇠붙이를 붙여 보수한 흔적도 있다. 조선인 출신인 일본 장교의 무기로 시작된 그의 여정은 강제 징용된 조선인 병사, 독립군, 제주 경비병의 손을 거쳐 서북청년단 단원, 빨치산의 손으로 이어진다. 문태유는 자신을 손에 쥔 주인이 악의 편이든, 정의로운 편이든 죽음을 촉발하는 '빵야'의 애달픈 운명과 울분을 간헐적으로 쏟아낸다.
◆ 무의미하게 소비되는 '전쟁' 스토리…수많은 창작자의 고민 담아
이 연극의 제목인 '빵야'는 극중에서 의인화된 주인공의 이름이자 나나가 쓰는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하다. 극의 해설과 함께 대부분 신에서 설명을 곁들이는 나나의 존재감은 믿음직하지만 때때로 방해물로도 느껴진다. '빵야'를 매력적인 소재로 삼은 이유, 그를 거쳐간 주인들을 조명하고 그들이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 것이 얼마나 비극이었는지는 나나의 해설이 없어도 충분히 전달된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연극 '빵야'의 한 장면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2023.02.16 jyyang@newspim.com |
그럼에도 나나를 빵야와 함께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는 '전쟁'이라는 소재가 얼마나 무분별하게 소비되는지를 꼬집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 그 자체가 자극적인 콘텐츠가 된 시대, 장총은 끊임없이 촬영장에 불려다닌다. 나나를 비롯한 창작자들에겐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전쟁 스토리를 쓴다는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무거운 과제가 남아있다. 전쟁과 죽음의 무거움을 모두가 느끼게 하고 경각심을 일깨운다.
극 중반에 나오는 "언제쯤 은하수를 끌어다 무기를 씻을까"라는 두보의 한탄은 수천년 전에도 반복됐던 전쟁의 비극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 연극은 태생 자체로 죽음과 피를 위한 존재 '빵야'의 꿈이 이루어질 때, 세상은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거라고 노래한다. 이번 '창작산실' 선정에 이어 조금 더 짜임새있는 이야기로 관객들과 소통할 좋은 작품이 될 자질을 갖췄다.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