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우회 수출로 모색 등으로 제재 충격 흡수
앞으로는 원유 가격상한제 충격 본격화 예상
전쟁 길어지면 2026년까지 GDP 1900억달러 '증발'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오는 24일(현지시각)로 1년이 되는 가운데, 서방국의 각종 제재와 글로벌 기업들의 탈출 러시 등으로 심각한 피해가 우려됐던 러시아 경제는 지금까지 의외로 견실히 버티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서방국들은 러시아의 돈줄을 압박하기 위한 제재들을 즉각 도입했지만, 자본 통제와 금리 인상, 우회 수출로 모색 덕분에 러시아 경제는 선방 중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의 작년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 2.2%일 것으로 추정되나 올해는 0.3%, 내년에는 2.1%의 플러스 성장 반전이 기대된다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년 간 자구책을 통해 버티기에 성공한 러시아 경제에 드디어 틈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전쟁이 길어질수록 피해가 막심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버티기' 성공 비결은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서방국은 지금까지 1만1300개 이상의 제재를 가했고 러시아 외환보유고 중 3000억달러 정도를 동결시켰다. 또 BP(브리티시페트롤리엄),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 1000개가 넘는 다국적 기업들이 러시아 탈출 또는 영업 축소를 택했다.
러시아 정부 1차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2.1% 위축됐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당초 10~15%의 위축을 예상하던 서방국 전망치보다 훨씬 양호한 수준이다.
22일 CNN은 러시아 경제가 서방 제재를 의외로 잘 버텨낸 데는 지난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한 뒤부터 러시아가 식량 자체 생산을 확대하고 은행들의 준비금을 늘리게 하는 등 '러시아 요새화(Fortress Russia)' 전략을 적극 추진한 것이 유효했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중앙은행이 금리를 20%까지 파격 인상하는 조치 등을 통해 루블화를 방어한 점, 서방국에서 수입하던 물품들을 자체 생산한 점 등도 러시아 경제를 떠받쳤다.
무엇보다 세계 원유 2위 수출국인 러시아가 유럽이 아닌 중국과 인도라는 수출 대안을 찾은 점, 전쟁 발발 후 이어진 고유가 상황 등은 러시아의 전쟁 충격을 흡수하기에 충분했다.
세르게이 알렉사셴코 전 러시아 중앙은행 부총재는 지난달 국제전략연구소 행사에 참석해 "천연자원의 문제"라면서 (관련 수요가 지속되는 한) "러시아 경제가 다소 후퇴할 순 있어도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가격상한제' 충격 속 전쟁 장기화 여부가 관건
지난해 러시아의 월간 평균 석유 수출액은 181억달러로 24%가 늘어 경제에 보탬이 됐지만, 앞으로는 에너지 부문이 러시아 경제에 직격타가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서방국이 꺼내든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러시아의 숨통을 조일 것이며, 전쟁이 길어질 경우 지난 1년과는 다른 러시아 경제 위기에 푸틴 역시 난처한 입장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서방국은 작년 12월부터 원유 가격상한제를 시행하기 시작했고, 이달 5일부터는 러시아산 정유제품에 대한 가격상한제도 도입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금까지야 러시아가 그림자 선단을 이용해 중국과 인도 등 인근 아시아에 원유를 판매할 수 있었지만, 중국과 인도의 정유산업이 이미 발달해 러시아산 정유제품을 대량 수입할 가능성은 적다고 지적했다.
유가 상한제에 대한 당초 회의론과 달리 이미 제재 효과는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국기 앞에 놓인 원유 배럴 일러스트 이미지. 2022.03.08 [사진=로이터 뉴스핌] |
에너지·청정공기연구센터(CREA)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12월 러시아가 화석연료 수출로 번 돈은 일일 1억6000만유로로 종전보다 17% 줄었고, 이 중 원유 수출을 통해 얻은 수입은 1억8000만유로가 감소했다.
러시아 우랄유 가격도 지난달 평균 49.50달러로 한 달 새 35% 정도 급락, 같은 기간 브렌트유 가격 하락폭인 15%를 앞질렀다.
동시에 노르트스트림 1 파이프라인에서 유럽으로 가는 러시아 가스 공급이 작년 9월 초부터 완전히 중단돼 가스 수출을 통한 수익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으로 전쟁이 길어질 경우 군사 비용에 대한 지출이 늘어나는 동시에 헬스케어나 기타 복지에 대한 지출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 타티아나 오를로바는 "올해 러시아 경제가 위축될지 확장할지 여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달려 있다"면서, 징집으로 인해 근로자가 줄어들고 러시아를 탈출하려는 이민 행렬 등도 주요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서방국 제재도 시간이 지나면서 러시아 경제 위기의 근원이 될 수 있는데,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오는 2026년까지 러시아 GDP가 전쟁 이전 대비 1900억달러 정도 줄 것으로 추산했다.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