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이익 공유·안보기관 접근 등 조건 과해
'가드레일 조항'으로 미·중 사이에서 '어려움'
"조항 면밀히 검토 및 협상 등에 따라 결정"
[서울=뉴스핌] 백진엽 선임기자 = 미국 정부가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의 생산 지원금 지급을 위한 심사 기준을 발표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이 내건 조건들이 국가안보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민간 기업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한국 기업들은 더 골치아픈 상황이다.
보조금을 받기 위해 기준을 따르려면 기업들은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을 하고 제시했던 이익 이상의 초과 이익이 나면 미국 정부와 나눠야 한다. 미국 정부가 원할 경우 언제라도 공장의 문도 개방해야 한다. 게다가 중국 등 우려국과 공동연구나 기술 투자 등을 할 경우 보조금을 토해내야 한다.
반도체과학법과 관련해 언급하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들에 총 390억달러(약 51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긴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위한 지원금 기준을 발표했다. △미국에 군사용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거나, 국방부 등 미 정부기관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공개하는 기업 우대 △초과이익 공유 △우려 국가에 반도체 투자 확장을 제한하는 이른바 '가드레일' 등이 담겼다.
이와 관련 국내 업계에서는 지나치게 까다로운 기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일단 해당 기준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한국과 미국 정부간 통상 상황도 지켜보면서 보조금 신청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당초 반도체 강국 및 공급망 장악을 노렸던 미국 정부가 미국 국민들의 여론 등까지 감안하기 위해 지나치게 과한 기준을 내놓았다"며 "초과이익 공유와 안보기관에 공장 개방 허용 등은 기업 입장에서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현지 매체인 뉴욕타임스 역시 관련 조건들에 대해 "새롭게 투자하려는 기업들에 과도한 부담을 주면서 오히려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려는 프로그램 목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초과이익 공유와 관련해서는 공유 자체도 부담이지만, 초과이익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 기업들이 재무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점도 압박이다. 기업들이 한해 살림을 어떻게 꾸려갈 지 미국 정부에 보고를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국가안보기관이 첨단반도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 역시 민감한 사앙니다. 한 관계자는 "공장을 보겠다는 것은 곧 설계를 보겠다는 것인데 이는 기업 경쟁력의 핵심인 첨단 기술을 그냥 가져가겠다는 이야기"라며 "지원금 신청 여부 결정에 이 부분이 크게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면서 중국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가드레일 조항' 역시 큰 불안요소다. 보조금 수령 자체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견제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보조금 수령시 중국에 추가로 투자하는 것이 극히 제한된다는 점도 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의 보조금이 적은 금액이 아니기 때문에 포기하기는 어렵지만, 받기에는 걸린 조건들이 너무 많이 걸린다"며 "일단 최대한 면밀하게 세부조항들을 검토해야 하고, 미국 정부와 협상, 한미 정부간의 외교 상황 등을 감안해서 결정들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 봤다.
jinebit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