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국립극장 국악관현악단이 31일 '탐(耽)하고 탐(探)하다'로 한국 창작음악 대표주자, 박범훈·김대성·황호준의 음악을 연주한다. 여기에서 황호준 작곡가는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거듭하며 가장 현재와 맞닿은 '오늘의 음악'을 선보인다.
◆ '이슬의 시간'과 '에렌델', 오늘의 음악을 찾아가는 과정
황호준 작곡가는 오페라·창극·무용극·연극·뮤지컬 등 다양한 음악들을 작업해왔으며 민족음악을 바탕으로 한 음악세계를 펼쳐왔다. 그간 수백 곡을 작·편곡하고 특히 국악관현악 '공.간.이.동.(空.間.移.動.)'(2009), 새야새야 주제에 의한 '바르도(Bardo)'(2016), '제비날다'(2017) 등 국립국악관현악단 위촉 작업을 통해서 국악관현악의 확장 가능성을 증명해왔다. 이번 '탐하고 탐하다'에서는 지난 2021년 이음 음악제에서 초연된 '이슬의 시간'과 함께 신작인 '에렌델'이 연주된다.
"'이슬의 시간'은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2021년 초연 이후 4회나 공연될 정도로 가장 많이 연주된 곡이에요. 사실 국립국악관현악단 위촉곡을 작업할 땐 책임감과 압박이 있어요. 상상력이 과잉되거나 기법적으로 개인의 문제 의식이나 고민이 강하게 담기기도 하죠. '이슬의 시간'은 전혀 다르게 작업했어요. 관현악적 기법, 추상적인 음향에 대한 상상을 빼곡히 넣고 낯섦을 끌어들이는 대신 익숙하고 친숙한 기법들과 함께했죠. 과정 자체도 행복했고 첫 연습하러 가서도 활짝 웃었던 기억이 나요. 무게감을 덜어내고 고민을 가득 담지 않은, 훅 쉽게 다가오는 곡이어서 사랑해주신 것 같기도 해요. 국악관현악단 음향에 익숙지 않은 분들도 편안하고 선명하게 들리는 멜로디와 스토리도 잘 다가오는 곡일 거예요."
황호준 작곡가 [사진=국립극장] |
황호준 작곡가는 도시 생활을 벗어나 달라진 환경에서 처음 썼던 '이슬의 시간'의 작업 과정을 천천히 떠올렸다. 새벽녘에 이슬이 선명하게 보이지만, 밤과 새벽을 교차되는 잠시간 머물다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이번 '탐하고 탐하다' 공연에서 새로이 선보이는 신곡 '에렌델'은 또 다른 의미의 '현재'를 노래한다.
"전통이나 과거, 역사는 시간을 우리가 상상하고 개념화한 것들이죠.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행동하고 감각하고 음악을 듣고 있어요. 전통음악, 국악, 클래식과 팝도 모두 현재의 음악이죠. 조선의 영·정조 때의 산조를 연주하면 지금도 살아있는 음악이에요. 우주 초기에 생성된 별을 지금 바라본다고 할 때, 그 별은 이미 수명이 다하고 없어요. 그렇다면 그 별은 과연 있는 걸까요, 없는 걸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유를 '오늘의 음악'과 더불어 풀어냈어요. 다양한 음악 중에 블랙핑크, BTS가 최신이고 산조, 전통음악, 아악은 예전의 음악일까요? 동시대에 울리는 지금의 음악인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에렌델'에선 지금 국악관현악에서 들려줘야 할 것에 집중했어요. 낯섦을 대면하려 애썼던 이전 작품들과도, 이미 익숙한 확신 정립한 것들을 담은 '이슬의 시간'과도 다르죠.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확 헤쳐내고 즉자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에 집중했어요. 무려 14개의 스케치가 나올 정도로 고심을 많이 했던 작품이에요."
◆ 그간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조명하는 공연과 황호준의 업(業)
황호준 작곡가와 함께 '탐하고 탐하다'에 참여하는 박범훈, 김대성 작곡가는 지난 50년의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음악을 조명하는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럼에도 황호준 작곡가에 따르면 2023년 3월 31일에 존재하는 '동시대의' 음악을 듣는 일에 다름없다. 흔히 오래된 것, 전통이라고 여기는 '국악'이 관객들과 만나 현재를 노래하는 음악으로 거듭난다.
"사적으로는 스승이신 박범훈 선생님은 70대 평생을 작곡해오셨고, 김대성 선생님은 또 50대의 대가이시죠. 그 둘의 성과를 받아안은 후배 작곡가가 만나는 무대예요. 박범훈 선생님은 국악관현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연주 양식을 확립하셨고 그 안에서 민족적인 내용과 연주행위를 담아오셨어요. 동시에 연주 참여 주체와 감상 주체들이 총체적으로 공간 안에서 음악행위를 즐기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시죠. 가장 한국적인 국악관현악 연주 양식이 무대와 극장 전체를 통해 구현되기 때문에 반드시 눈을 뜨고 감상하시면 더 생생히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김대성 선생님은 한 사람이 치열하게 보낸 시간 안에서 타악기의 한 소리 타점 하나까지도 그 음향 안에서 의미가 있도록 만들어내는 치열한 작곡가예요. 그 의도를 충분히 구현해내면 성공적인 연주가 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눈을 감고 들어도 충분히 와닿을 만한 연주가 아닐까 싶어요."
국립국악관현악단 [사진=국립극장] |
오래도록 흔치않은 분야에서 창작 활동에 열중해온 황호준 작곡가는 국악관현악단과 같은 단체의 레파토리를 개발하면서는 더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최근 국악으로 확장되고 새로운 분야로 관객 유입이 늘어나는 만큼, 많은 이들의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위한 작업을 계속해나갈 예정이다.
"사적 작업은 내 안의 욕망의 부침만 겪어내면 되지만 이런 작업은 공적 의무감과 책임감이 약간 따라붙어요. 우리만의 민족음악 전통성과 특수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재의 음악으로 일리있기 위해 어때야 하는가 고민을 하죠. 독특하고 개성있고 새로우면서도 동시대성을 갖고 당대의 관객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겠단 욕망에 국악관현악단의 역사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죠. '오늘의 음악'이라는 건 국악이든 오페라든 다 공통이에요. 현재에 존재하는 음악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게 중요하죠. 늘 익숙한 것에 감각을 방치해두면 생생한 감각적 경험에 무뎌져요.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누구든 끌어오고 싶은 맛집이에요. 경험해보면 일상적인 것들과 다른, 신선함을 기억을 가져가실 거고 새로운 활력이 되실 거예요.
특히, 황호준 작곡가는 가장 순수예술의 극단에 서 있는 창작자로서 챗GPT 등 AI시대에 대한 생각도 얘기했다. 챗GPT나 AI가 인간을 대체한다면 절망스럽긴 하겠지만 당장 대체되는 것들은 사실 그럴 만한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내면에서는 대체되지 않는 인간만의 특질은 있을 것이라고도 봤다. 인간이 인간성을 지나치게 신성시할 필요는 없지만,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결정들을 노래하고 그려내는 것이 예술 그 자체라고도 했다.
"예술이 AI에 의해 대체된다면 그 행위가 AI처럼 기법이나 기능적인, 기술적으로 프로그래밍 되고 정교하게 훈련에 의해 이루어진 부분이 있단 의미죠. 또는 굉장히 다양한 정보의 총합으로서의 상상력에 기댄 부분이 있었다거나요. 그럼에도 인간은 조금 다르죠. 누군가 굶어죽을 때 아무 감정이 안 느껴진다면 '내가 왜 이렇지?'하는 공포를 느끼는 게 인간의 전제예요. 여전히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스스로를 희생하는 행위, 인간의 아름다운 점을 형상화하고 끄집어내고 다른 형태로 일반화하고 음악, 미술, 서사와 결부시켜 순간의 결단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일깨우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에요. 상처받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발현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나가게끔 하는 일이고요. 인간이 대체되는 부분은 사실 우리가 안 해도 됐던 일들일 수도 있어요. 그런 것에서 해방돼서 진짜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게 챗GPT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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