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4% 초반대까지 내려와…수출 둔화 등 경기 부진
올해 성장률 1.6% 하회 예상…금리 인하 논의 '일축'
[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한국은행이 경기 부진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등이 촉발한 금융 불안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또 동결했다. 한은은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이 당초 전망인 1.6%를 밑돌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1일 오전 서울 중구에 있는 한은에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를 열고 현재 3.50%인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에 이어 2회 연속 기준금리 동결이다. 이번 기준금리 동결은 금통위원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국내 물가 상승 둔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은이 경기 대응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1월 5.2%에서 2월 4.8%로 떨어졌다. 지난 3월에는 4.2%까지 내려왔다. 한은은 물가 상승률이 상반기 4.0%를 기록한 후 하반기 3.1%로 떨어지는 흐름이 이어진다고 전망했다.
[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2023.04.11 ace@newspim.com |
경기 부진 또한 기준금리 동결을 뒷받침하는 배경이다. 수출은 지난 3월까지 6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4월 수출도 불안하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8.6% 감소했다. 수출 부진으로 경상수지는 지난 1월에 이어 2월까지 2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국내 소비 흐름도 심상치 않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국내 카드 승인 금액은 지난해 12월 96조2000억원에서 지난 1월 93조원으로 소폭 떨어졌다. 지난 2월에는 87조5000억원을 내려오며 두 달 연속 감소했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투자와 소비가 더 위축될 수 있다.
이창용 총재는 "금년 성장률은 지난 2월 전망치 1.6%를 소폭 하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국과 유럽 1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좋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SVB가 찬물을 끼얹었다"고 말했다.
SVB 파산과 크레디트스위스(CS) 유동성 위기 등 금융 불안과 국내 금융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위험 우려 등도 기준금리 동결 배경으로 꼽힌다. 이날 한은은 레고랜드발 금융시장 불안을 줄이기 위해 시행한 대출 적격담보증권 범위 확대 조치를 오는 7월말까지 3개월 추가 연장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동결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고 부동산 PF 대출 우려가 줄었으면 한다"며 "연체율 등을 보면 과거보다 낮은 수준이고 금융권 대손충당금 등을 보면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총재는 "일부 금융기관이 어려울 수 있는데 금융 전반으로 번지지 않도록 대응하는 툴을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통위는 이날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연 3.50%로 동결했다. 2023.04.11 photo@newspim.com |
한은 기준금리 동결 결정으로 한국과 미국 간 금리 차이 1.25~1.50%포인트는 유지됐다.
◆ 기준금리 인하 논의 선 그어…금통위원 5명, 최종금리 3.75%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 논의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물가 상승률이 떨어지는 추세이나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아직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원물가는 국제 유가 변동 등 공급 변수를 제거하고 수요 압력에 의한 물가 상승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올해 초 4.1%인 근원물가는 지난 2월과 3월 4.0%를 기록했다. 소비자가 1년 후 예상하는 물가 수준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지난 3월 3.9%로 3개월 만에 떨어졌으나 높은 수준이다.
이 총재는 "근원물가 상승률은 최근 더딘 둔화 흐름을 고려할 때 지난 2월 전망(3.0%) 경로를 다소 상회할 가능성이 크다"며 "연말 물가 전망은 3% 초반으로 보며 물가가 충분히 그 이하로 떨어져 중장기 목표(2%)로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금리 인하 논의는 안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대신 기준금리 인상 재개 선택지도 남겨놨다.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최종금리 3.75%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최종금리 3.5% 의견을 낸 금통위원은 1명뿐이다.
이 총재는 "물가 둔화 흐름이 예상되나 산유국 추가 감산과 국제 유가, 국내 공공요금 인상 불확실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SVB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 통화정책 불확실성으로 3.75%로 갈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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