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금융위원장→경제부총리 고사→CEO行
NH금융 회장 시절, 유연한 듯 해도 실체는 매우 깐깐
[서울=뉴스핌] 한기진 기자 = # 2013년 가을. 당시 NH금융계열사의 A대표는 임종룡 NH금융지주 회장(2013년 6월~2015년 2월 재임)이 주재한 NH농협금융 자회사 CEO(최고경영자) 전략회의에서 '쩔쩔맸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을 인수한 직후였는데 임 회장이 숫자에 대단히 밝아 깜짝 놀랐다. NH투자증권의 각종 재무와 투자지표 등 경영수치까지 언급하며 CEO에게 묻는데, '임 회장이 저런 것까지 파악했나….' 놀라서 식은 땀이 날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정부 정책을 만드는 고위관료 출신들은 규정을 먼저 꺼내 조직을 장악하고 경영 리스크부터 관리하는데, 임 회장은 수치에 기반한 성장 전략부터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모습이 놀라웠다"고 했다.
# NH농협생명 B 前본부장은 임 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고위관료 출신들에게서 흔히 보여지는 권위적이고 딱딱한 성향이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임 회장은 NH농협금융 경영진들을 교체하지 않고 유지하려는 편이었다. 권위적으로 명령하지 않고, 아랫사람들의 보고를 유연하게 잘 받아주는 편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 드러난 유연함에 속지마라"고 조언한다. 그는 "유연하게 보고는 받지만, 조직과 사람이 일을 많이 하도록 만드는 기술이 있다"면서 "임 회장과 오랫동안 일하고 나면, '내가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형석 기자 leehs@ |
NH농협금융지주에서 임 회장 밑에서 일한 경영진들의 말을 들어보면, 경영자로서 임종룡은 매우 까다롭다. 임 회장이 유연한 중재자라는 일반적인 평가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금융 내부는 착한 CEO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임 회장이 지난 2월 박봉수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을 만나 "직원들과 노조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임기 동안 우리금융 직원들을 사랑할 것이고 사랑했던 회장으로 기억되도록 하겠다"고 말한 영향이 크다.
기대와 달리 임 회장은 우리금융 조직문화 쇄신의 뜻이 강한 것 같다. 우리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도 임 회장을 선임한 이유로 "과감한 조직 혁신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뒤집어 보면 임 회장이 후보시절 면접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고 방안도 제시했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임 회장은 취임 초부터 자기 색깔을 내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브랜드부문 부사장(겸임 우리은행 부행장)에 언론인 출신인 장광익 MBN 기획실장을 영입했다. 장 부사장은 매일경제신문과 MBN에서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등을 거치며 다양한 분야의 경험이 있고, 특히 임종룡 회장과는 연세대 경제학과 동문이다. 우리금융의 브랜드와 평판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이를 통해 조직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노림수다. 순혈주의가 뿌리깊은 은행에서 임원급 외부 영입은 드문 일이다.
우리금융은 우리은행의 두 합병 축인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다. 오죽하면 우리은행 노조위원장 선거가 한일과 상업은행 출신간의 대결로 벌어지다가, 2022년 당선된 박봉수 위원장이 '우리은행 1기 출신! 통합 1세대'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세웠을까.
임 회장은 前금융위원장으로서 우리금융을 둘러싼 금융정책 및 감독 문제를 쉽게 풀어낼 능력이 있다. 특히 증권사, 보험사 인수에 필수적인 금융위의 승인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원장을 거쳐 경제부총리로도 유력했던 그가 우리금융 회장 자리에 어떤 매력을 느꼈을 지는 알기 어렵다.
우리금융은 정·관계의 외풍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금융그룹이기 때문에, 우리금융과 직원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금융은 흔들리고 직원들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소문처럼 법무법인 율촌에서 고문으로 일하면서 받은 연봉 규모가 논란이 될 것을 우려해 경제부총리 대신 우리금융을 택한 것은 아니길 바란다.
hkj7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