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보조금 4조·R&D 7조 삭감…나머지는 비공개
세부내역 공개 요구 거절…구조조정 명분 떨어뜨려
[세종=뉴스핌] 성소의 기자 = 정부가 내년에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재정기조를 유지하기로 선택하면서 23조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이뤄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절반이 넘는 12조 규모에 대해서는 세부내역을 공개하지 않아 '깜깜이' 구조조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29일 오전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약 23조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2년 연속 20조원이 넘는 대규모 지출 구조조정이다. 정부는 지난해 2023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는 과정에서도 역대 최대 규모인 24조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내년에는 대통령의 질타를 받은 보조금과 연구개발(R&D) 예산이 올해 대비 각각 4조원과 7조원 감액된 것으로 전해졌다.
2024년 예산안 [자료=기획재정부] 2023.08.29 soy22@newspim.com |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 나머지 12조원에 대한 구체적인 삭감 내역은 공개되지 않았다. 언론 브리핑에서 삭감 내역들을 공개해달라는 취재진 요청이 수차례 이어졌지만 정부는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김동일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예산이 삭감돼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과 재정이 늘어나서 혜택을 보는 사람 간에 불일치가 있다"며 "그래서 이것을 일일이 맞춰가면서 설명하기는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설명했다.
예산이 삭감된 사업들 목록을 공개할 경우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은 예고된 수순이고 정부 입장에서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공개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신 정부는 이번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어떤 기준으로 사업들을 구조조정 했는지 설명했다.
이는 ▲보조사업 연장평가 때 민간 수행이 바람직하다고 권고받은 사업 ▲국회에서 집행 부진에 대해 지적을 받은 사업 ▲감사원, 국조실, 기재부 등에서 적발한 결과 부정수급과 부정 집행이 이뤄진 사업 ▲나눠먹기식 비효율적 R&D 사업 등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출 조이기'만 강조하고 실제 삭감된 내역은 밝히지 않아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전문위원은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을 수십조원 했다는 사실은 검증이 불가능하다"며 "그런 상황에서 (23조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는 것은 정부의 주장에 불과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4년도 예산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08.23 leehs@newspim.com |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예산안에서도 '건전 재정'과 '약자 복지'에 방점을 뒀다. 실제 편성된 예산안이 이를 뒷받침하는지 따져보려면 삭감된 사업내역과 이를 통해 재투자한 분야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에도 정부는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예산을 대폭 늘렸다고 주장했지만 공공 임대주택 관련 예산(5조7000억원)은 감액했고, 임산부 친환경 농산물 지원 예산(158억원)과 초등 돌봄교실 아동 과일간식 지원 예산(72억원) 등도 일부 감액 편성했다.
전문가들은 600조원이 넘는 나라살림을 운용하는 정부가 예산증감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투명한 재정운영'이라는 정부 의무를 져버리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이 전문위원은 "결과적으로 정부 지출을 줄여야 될지, 늘려야 될지는 국민들의 합의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국민들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줄였고 무엇을 늘렸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삭감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부의 실질적인 긴축 노력을 평가하기도 어렵다. 내년 코로나19 시기 한시적으로 시행됐던 사업들이 종료되거나 정리되면서 정부지출이 자연히 감소할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이를 별도로 집계해보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일시적 사업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따로 계산해보지는 않았다"며 "작년에 대부분의 코로나 관련 일시적 소요는 정리가 된 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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