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 사건 파기이송…종래 판례 뒤집혀
"항거 곤란 요구, 정조 수호 요구 전제"
[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대법원이 40년 만에 강제추행죄의 성립 기준을 완화했다. 범죄구성 요건의 해석 기준을 명확히하고 형평과 정의에 합당한 형사재판을 실현하겠다는 취지다.
상대방의 항거 가능 여부와 무관하게 신체에 폭행을 가하거나 공포심을 줄 만한 협박을 한다면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는 판례를 내놨다.
[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진=대법원] 2023.09.21 sykim@newspim.com |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1일 성폭력처벌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15세였던 사촌동생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으나 2심은 주위적 공소사실(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을 무죄 판단, 공소장 변경으로 추가된 예비적 공소사실(아동청소년법 위반) 만을 유죄로 인정해 1심보다 감형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한 "만져달라", "안아봐도 되냐"는 등의 말은 객관적으로 피해자에게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이 피해자를 침대에 눕히거나 양팔로 끌어안을 때 피해자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봤다.
다만 "피고인이 "한 번만 안아달라" 등의 말을 한 것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위력에 해당해 추행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형법 및 성폭력처벌법은 강제추행죄의 구성요건으로 '폭행 또는 협박'을 규정하고 있다. 종래 판결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행했을 경우 강제추행죄가 성립된다고 봤다.
하지만 전원합의체는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 할 경우 강제추행죄가 성립된다고 보고 사건을 파기이송했다.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의 신체에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해 강제추행한 것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같은 취지의 종래 판례들 또한 뒤집혔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의 범죄구성 요건과 보호법익, 종래의 판례 법리의 문제점, 성폭력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 판례 법리와 재판 실무의 변화에 따라 해석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강제추행에서 '강제(強制)'의 사전적 의미는 '권력이나 위력으로 남의 자유의사를 억눌러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으로, 반드시 상대방의 항거가 곤란할 것을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항거 곤란을 요구하는 종래의 판례 법리는 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인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피해자의 '항거곤란'을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입장을 전제하고 있고,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현행법의 해석으로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1983년도부터 상대방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고 한 종래의 판례(83도399) 법리를 40여년 만에 변경했다"며 "강제추행죄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보호법익, 근래 재판실무의 변화에 따라 해석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성 등에 비추어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고 성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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