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 방문한 농식품부, 가공유 조달 지원 제안
투게더에 '흰 우유' 쓰는데...품질 저하 우려도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아이스크림용 원유를 보다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용도별 차등가격제 참여를 지원하겠다."
지난달 28일 빙그레의 충남 논산공장을 방문한 김정욱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관의 말이다. 그는 빙그레 측에 "아이스크림 가격안정에 적극 협조해달라"며 이같이 피력했다. 가격인상 자제와 함께 원가 절감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정부는 최근 식품업체를 대상으로 물가안정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농식품부는 우유·빵·라면·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 9개 품목에 물가 관리 전담자를 지정했으며 동서식품, 롯데칠성음료, 농심, 삼양식품, CJ프레시웨이 등 업체를 순차 방문해 물가안정 동참을 당부했다. 먹거리 물가안정을 앞세워 사실상 식품업체에 '경고'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관련해 빙그레는 올 초와 10월에 원부자재 조달 비용 증가, 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메로나, 투게더 등의 아이스크림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두 번의 인상을 통해 빙그레 주요 제품 가격은 20% 넘게 올랐다.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2023.12.04 romeok@newspim.com |
문제는 정부의 이같은 강도높은 압박이 자칫 제품 용량을 줄여 판매하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과 품질을 낮추는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 등 숨겨진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이번 빙그레를 방문한 축산정책관이 언급한 '용도별 차등제' 지원은 업체 측에 원가절감 방안을 제시하려는 의도이지만 뒤집어보면 품질 낮은 가공유 사용을 독려한 것으로도 읽힐 수 있다.
용도별 차등제는 우유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를 나누어 각각 다른 가격을 적용하는 제도다. 음용유는 일반 흰우유를 의미한다. 가공유는 한 단계 낮은 품질의 우유로 흰 우유보다 가격이 낮다. 통상 아이스크림 제조에는 음용유(흰 우유)와 분유가 사용된다. 가공유는 대개 버터, 치즈 제조에 쓰이고 아이스크림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현재 빙그레가 우유 원유(흰 우유)를 재료로 사용하는 제픔은 투게더 등 프리미엄급 아이스크림이다. 우유 맛을 강조한 제품인 만큼 흰 우유를 원재료로 채택한 것이다. 물론 흰 우유 대신 가공유로도 제품을 만들 수 있겠지만 이 경우 맛과 풍미를 포기해야 한다. 별개로 메로나 등 일반 제품은 원가 요인으로 분유를 사용한다. 가공유는 흰 우유 보다 품질은 낮지만 분유에 비해서는 가격이 높다.
빙그레 측은 투게더 등 기존 프리미엄급 아이스크림 원재료를 음용유에서 가공유로 변경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제조비용이 지속 상승하는 상황에서 정부 당국자가 업체 측에 가공유 사용을 '권장'한다면 자연히 제품의 품질을 낮추는 스킴플레이션을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실제 최근 식품업계에서는 가격 인상 대신 용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추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오렌지주스의 과즙 함량을 100%에서 80%로 줄였고 BBQ는 100% 올리브유를 사용하던 튀김유의 올리브유 함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CJ제일제당, 동원F&B, 풀무원 등 업체들도 각각 햄, 참치·김, 핫도그 등 제품 중량을 축소시킨 바 있다. 국민 생활 안정을 위한 정부의 물가안정 노력은 높게 사지만 지나친 개입은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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