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후속조치 추진
배당·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늘리면 법인세↓
'큰 손' 대주주 유인책으로는 배당소득세 감면
[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시장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으로 주주환원에 참여하는 기업에 법인세·배당소득세를 감면한다.
투자 위축 우려로 배당을 주저하는 기업에는 법인세 인하를 통한 투자 여력을 지원하고 금융소득종합과세의 벽에 부딪혀 주식 투자를 망설인 개미들에게는 배당소득세 부담을 덜어 자연스레 국내 증시를 부양한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주주환원액 증가액의 일정 부분에 대한 세액공제를 통해 법인세 과표구간을 낮추고, 배당소득세에 대해서는 분리과세를 도입해 저율 과세가 되도록 설계한다.
◆ 법인세 카드로 기업 배당 확대 지원…세액공제로 과표 내리는 방안 유력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이런 내용이 담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세부 방안을 설계 중이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자본시장 선진화 관련 간담회를 개최하고 기업의 배당·자사주 소각으로 인한 증가액의 일정 부분에 대해 법인세와 배당소득세를 감면한다고 밝혔다. 기업의 주주 환원 확대를 유인하기 위한 세제지원책이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 관련 간담회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2024.03.19 yooksa@newspim.com |
먼저 배당을 늘린 기업에 대해서는 주주 환원액 중 일부를 세액공제 해 법인세 과표를 낮추는 방안이 유력하다. 그동안 기업들은 배당을 늘리는 데 소극적이었다. 고도성장을 겪으면서 주주환원을 위한 배당보다는 기업 성장이 우선이었던 탓이다. KB증권의 주요국별 10년간 평균 주주 환원율에 따르면 미국이 92%로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은 68%, 신흥국은 37%, 중국은 32% 그리고 우리나라는 29%에 불과하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수익을 지속해서 유지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투자를 발굴해야 하는데 배당을 늘리게 되면 그만큼 투자여력이 줄어드는 것"이라며 "한마디로 우리 기업은 그동안 성장과 분배 그 사이에서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기업이 투자와 배당 사이 갈림길에서 고민하지 않도록 법인세 감면을 통해 이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증가한 주주 환원액 중 일정 부분에 대한 세액을 공제해 실질적인 세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다. 주주 환원액의 증가 기준점은 '전년', '최근 3년 평균', '최근 5년 평균'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다. 다만 '전년'을 기준으로 할 경우 그동안 주주 환원에 앞장서 왔던 기업이 역차별을 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만큼 기재부는 기준점을 고심하고 있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이후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규모가 1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대형상장사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2022년 3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6조4000억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여기에 정부가 법인세·배당소득세 감면 카드를 내세운 만큼 10조는 거뜬히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이후 기업들로부터 환영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다"며 "특히 그동안 법인세·배당소득세에 묶여 밸류업을 주저하던 기업들이 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전해왔다. 기업의 성장분은 결과적으로 온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고 전했다.
다만 권 교수는 주주 환원의 일환으로 배당액이 늘어나 증시가 활성화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 매도로 인한 증시 하락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 교수는 "국내 주식을 오랫동안 쥐고 있는 외국계 펀드, 기업들이 증시 부양과 동시에 대규모의 주식 매도가 이뤄지면 오히려 마이너스 증시가 올 수도 있다"며 "주주 환원이 국내 경제 활성화라는 선순환 구조로 진행되려면 배당금이 국내에 남아있을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배당소득세 분리과세 검토…'배당소득증대세제' 벤치마킹
기재부는 법인세와 더불어 배당소득세 감면도 병행 추진한다. 배당을 확대한 기업 주주의 배당소득세 부담을 줄여 국내 증시를 활성화하겠다는 목표다. 현재는 연간 배당소득이 2000만원 이하면 배당수익의 15.4%를 과세하지만 2000만원을 넘어서면 금융소득종합과세(최고세율 49.5%) 대상이 된다. 해외 주요국의 경우 미국은 1년 보유 시 15% 분리과세, 중국과 베트남은 10%를 부과한다. 아시아 금융 허브고 불리는 홍콩은 0%다. 이에 따라 국내 주식 투자가 제한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기재부는 배당소득세에 대한 세액공제, 소득공제, 분리과세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분리과세가 가장 유력하다고 입을 모은다. 분리과세를 하게 되면 금융소득종합과세에 합산하지 않고 원천세율(15.4%)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기업에 법인세 감면이라는 당근을 흔들었다면 투자자에게는 배당소득세 감면이라는 유인책을 사용한 것이다.
배당소득세 감면이 소수의 대주주에게만 돌아간다는 '부자감세' 논란을 피하고자 정부가 특단책을 내놓을 가능성도 적잖다. 개미들을 위한 인센티브 규정을 별도로 신설하거나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의 세율을 더 낮추는 방식이다.
실제로 기재부가 벤치마킹 한 박근혜 정부의 '배당소득증대세제'는 배당을 확대한 기업의 대주주와 소액주주 모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배당금 연 2000만원 이하인 개미에게는 9%의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연 2000만원을 초과하는 금융소득종합과세자의 세율은 38%(당시 최고세율)에서 25%로 파격적으로 낮췄다.
다만 기재부는 법인세·배당소득세 감면을 담은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배당 확대의 기준을 비롯해 세부적으로 감면 방안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시물레이션을 거쳐 결정할 예정"이라며 "내부적으로는 7월 세법개정안 이전을 데드라인으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권 교수는 "현재 정부의 '배당소득세 감면책'은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 추진했던 '배당소득증대세제'와 큰 차이는 없다"며 "기재부가 세부사항을 설계하고 있지만 큰 줄기는 같다. 당시에는 '배당소득증대세제'가 큰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연장 없이 일몰됐지만 기재부가 이를 반면교사 삼아 더 현명한 방안을 만들어 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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