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재미만 줘야 하는지, 저도 사유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갈등이 있었죠. '나는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들어간 작품이에요."
영화 '우아한 세계', '관상', '더 킹', 그리고 '비상선언'을 선보인 한재림 감독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통해 첫 시리즈물 연출에 나섰다. 배진수 작가의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원작으로 한 '더 에이트 쇼(The 8 Show)'를 통해 연출과 극본을 맡은 한 감독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더 에이트 쇼'의 한재림 감독 [사진=넷플릭스] 2024.05.22 alice09@newspim.com |
"일단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신 것 같아서 기뻐요. 첫 시리즈 연출인데, 영화는 관객 스코어가 있어서 부담이 있거든요. 그에 비해 OTT는 설렘이 있었어요.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난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떨리고 설레더라고요."
이번 작품은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비밀스런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쇼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8명의 사람, 8개의 층에서 8인이 벌이는 희비극이다.
"서바이벌 장르의 주인공은 위기를 헤쳐 나가는 영웅이잖아요. 하지만 '더 에이트 쇼'에서 주인공은 현실과 비슷한 인물이에요. 블랙 코미디 요소를 가지고 있죠. 이 사람이 주인공임에도 특별한 능력도 없고, 위기를 맞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서바이벌 장르를 비틀어 보고 싶더라고요. 또 '파이게임'도 봤는데 서바이벌에서 한 명도 죽으면 안 된다는 설정과 시간을 벌어서 돈을 버는 구조의 설정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더 에이트 쇼' 메인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2024.05.22 alice09@newspim.com |
작품은 존재를 알 수 없는 주최 측에게 '재미'를 주어야만 공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개인당 가져갈 수 있는 상금 또한 늘어난다. 한재림 감독은 "극본을 쓰다가 자연스럽게 이입이 됐다"고 털어놨다.
"8명은 주최 측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노력을 하잖아요. 극본을 쓰는데 제가 하는 일이랑 똑같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거기서 이입이 됐죠. 저 역시 관객에게 재미를 줘야 하니까요. 그래서 제목도 '쇼'라는 게 붙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단순히 게임이 아니라 쇼라는 생각이 들어서 엔터테인먼트라는 의미로 '더 에이트 쇼'라는 제목이 붙어졌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통해 질문을 잘 던졌다고 생각해요. 지금 도파민의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재미있는 게 중요하고요. 예전에는 하나의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없어지면서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아쉬움을 담으려고 했어요."
한 감독은 2005년 영화 '연애의 목적'으로 충무로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후 '더 킹', '비상선언'의 감독, 각본, 기획, 제작 등을 두루 맡으며 남다른 연출력으로 호평을 얻었다. 최근 OTT 시리즈물이 많은 자극을 담는 가운데, 첫 연출에 나선 한 감독은 영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현 시점 자극만을 요하는 시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더 에이트 쇼'의 한재림 감독 [사진=넷플릭스] 2024.05.22 alice09@newspim.com |
"처음에 장면이 영화 콘셉트로 시작하고, 진수가 사채업자에게 쫓겨서 도망가는 곳이 영화 촬영지에요. 영화로 관객을 초대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또 1층에 살고 있는 인물은 광대고요. 마지막 1층이 영사기를 잡고 떨어지고, 필름에 불 타 죽잖아요. 그게 영화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녹여낸 거죠. 저 역시 이 작품을 만들면서 '이 장면을 넣으면 관객들이 좋아하겠다'라고 예측되는 게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 작품들이 재미만을 쫓는데, 재미만을 위해 장면을 넣는 게 과연 맞나 하는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극중 8층과 6층의 정사 장면도 넣지 않았어요. 또 고문 장면도 폭력적이고 윤리적으로 안 맞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올 수 있지만, 그걸 보고 쾌감을 느낄 관객은 없잖아요. 우리가 자극의 끝에 갔을 때는 결국 고통만 남고 혐오가 남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거죠. 저는 이제 질문을 던진 거라 아직 이 부분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어요."
작품 속 1층부터 8층의 인물은 각기 다른 금액의 돈을 받는다. 피라미드 구조의 현실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만큼 이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8층(천우희)는 모든 것을 누리며 하위 계층에게 자신만을 위한 '재미'를 요구한다. 상위 계층의 악랄함을 권선징악의 엔딩으로 끝낼 수도 있었지만, 한 감독은 엔딩마저 비틀어 버렸다.
"그 통쾌함이 사실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느껴요. 콘텐츠 생산자로서 제가 과연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아쉬움을 담았어요. 7층이 이걸 시나리오로 만드는데, 이건 어떻게 보면 자조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죠. 이 작품의 주최는 관객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도 모르게 여기에 빠져 들면 죄책감이 느껴지고, 나를 건들게 되거든요. 자극적인 것만 쫓는 재미가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의도한 거죠. 그래서 보시는 분들과 같이 고민해보고 싶어요."
alice0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