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임대시장, 기업 비중 높여 정부 조절력 높이겠다는 의도 있어
임대차 시장 생태계 다양화 측면 긍정적…시장 혼란 탈출구 모색 필요
'합리적 임대료' 경쟁력 관건…시장 반응도 변수
전세가격 급등락 구도 깨기에는 단기 대책 부재…다주택자 규제·임대차 2법 해법 제시돼야
[서울=뉴스핌]김정태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정부가 지난 28일 보험사 등 사실상 대기업을 끌어들이는 민간임대주택 공급방안을 제시했다. 임대료 규제 등을 대폭 풀어주고 기업이 20년 이상 주택을 장기 임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 골자이다.
지난 8·8공급대책이 공공 주도의 '주택공급 속도전'을 발표한 것이었다면 이번 장기임대주택 공급 방안은 개인들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민간 임대차 시장을 기업으로 전환해 보려는 시도로 보여진다.
국토교통부가 추진 배경에서도 밝혔듯이 자가 60%, 임대 40%로 나뉘는 국내 주택시장 가운데 임대시장의 80%는 비등록 사업자 또는 개인에 편중돼 있어 전월세시장의 불안요소로 자리잡고 있다는 판단이다.
공공임대는 도심 노른자위에 충분히 공급하는데 한계가 있다. 때문에 자본력을 동원할 수 있는 기업들에게 장기임대차 시장을 만들어갈 수 있는 토대를 규제완화와 세제혜택 등을 통해 제공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8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 민간임대주택 베르디움 프렌즈를 방문한 자리에서 '새로운 유형의 장기임대주택'에 대해 입주예정자, 업계 관계자와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제공=국토부] |
특히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올 초 취임이후 줄곧 기업주도의 장기임대주택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박 장관은 이날 경제장관회의에 이어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 민간임대주택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민간 중심의 임대차시장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장관 취임후 가장 먼저 관심을 가졌고 오늘 발표에 이르렀다"면서 본인이 주도하는 정책임을 숨기지 않았다.
임대차 시장의 생태계를 다양화한다는 측면에선 분명 긍정적이다. 임대차2법(2+2 계약갱신청구권·5%상한룰) 도입이후 4년 주기로 벌어진 역전세난과 전세대란을 번갈아 겪으면서 시장의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을 바꿀 탈출구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근본적 해법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다. 원희룡 전 장관이 전세제도의 폐지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반발이 커지자 인위적 개편은 없다고 한발 빼는 일도 있었다. 그만큼 전세제도는 우리 주거문화의 '주거사다리'역할을 해 온 게 사실이다.
전세시장은 매매와 다르게 정부가 컨트롤하기 어려워 애를 먹어왔다. 개인 물량의 수급에 따라 시장이 움직이다보니 가격의 급등 또는 급락을 반복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정부는 이 '천수답' 같은 구도를 깰 수 있는 해법이 필요했다. 임대차시장에서 기업들의 비중이 높아진다면 정부도 '정책적 수단'을 쓸 수 있는 카드가 생겨 상대적으로 수급 조절에 용이해질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제도는 있었다. 박근혜정부에서 추진됐던 '뉴스테이'나 '중장기분양전환 민간임대' 역시 기업들에게 혜택을 주며 민간임대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물론 이번에 발표된 장기민간임대의 내용을 살펴보면 좀 더 완성도가 높아지긴 했다. 확실한 '자금줄'을 끌어다 쓸 수 있도록 금융권에게도 개방하고 리츠를 통해 임대수익도 세입자가 가져 갈 수 있도록 한 것은 나름 과거의 실패를 보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려는 있다. 무엇보다 임대료 문제다. 정부가 장기임대의 유형을 규제 차등화를 통해 구분해 놓긴 했지만 개인 집주인들이 세놓는 전월세와 비교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장기임대는 더욱 그렇다. '내집마련'의 욕구가 큰 계층에게 '합리적 임대료'만으로 유인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장의 반응에 따라 달라질 변수가 있다는 얘기다.
이번 정부의 대책은 8·8공급대책과 마찬가지로 단기 대책이 뒷받침 되지 않은 게 아쉽다. 정부가 서둘러 이달 중에 제도화한다는 방침이지만 실제 공급이 본격화하기까지 시일이 걸릴 수 밖에 없다.
민간임대시장의 판도가 정부 의도대로 바로 바뀌면 좋겠지만 엄연히 개인 임대의 비중이 높은 시장을 단기에 깨기는 어렵다. 이를 인정하고 단기 대책도 함께 포함됐어야 했다.
임대차시장의 불안은 오히려 '정권이 키운 리스크'의 결과라는 비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와 임대차2법 등을 여전히 숙제로 둘 것인지 묻고싶다. 이들의 해법 없이 임대차시장 나아가 매매시장 안정화를 바란다는 것은 난세스다.
dbman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