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이탈·26일 고용변동신고…불법체류자 초읽기
정부 "임금을 더 주는 쪽으로 갔을 것" 추정만
전문가 "이동·휴식시간 지적…정부 이해도 떨어져"
[세종=뉴스핌] 양가희 기자 = 숙소를 이탈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2명의 위치가 보름째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업 시행 전 예견됐던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제도 설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30일 고용부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통해 입국한 이탈자 2명의 위치를 보름째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고용부와 서울시는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아이 돌봄 업무를 맡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마련했다. 시범사업을 통해 지난달 6일 필리핀 국적의 가사관리사 100명이 입국, 이달 2일까지 160시간의 교육을 받고 3일부터 각 가정에 파견됐다.
가사관리사 100명 중 2명은 추석 연휴인 이달 15일 오후 8시경 숙소를 이탈했다. 시범사업 참여 민간업체는 이달 18일 가사관리사 그룹장(10명 단위 소그룹 리더)의 연락을 받고 폐쇄회로(CC)TV를 확인, 19일 고용부와 서울시에 이탈 사실을 알렸다. 이들 민간업체는 가사관리사를 직접 고용한 민간업체다. 서비스 이용 가정 역시 가사관리사와 직접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업체와 거래하는 형식이다.
시범사업 업체는 지난 26일 관할 고용노동청에 이들 이탈자의 외국인 고용변동신고를 했다. 고용변동신고는 고용허가제(E-9 비자)로 입국한 근로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5영업일 이상 무단결근하면 고용주가 고용부에 알려야 하는 절차다. 고용부는 고용변동신고 내용을 법무부와 즉시 공유한다. 이탈자는 법무부의 출석통지에 한달 내로 응답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권역별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이용 가정 현황 [자료=서울시] 2024.09.30 sheep@newspim.com |
고용부 관계자는 이탈 사유에 대해 "이탈자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사유는 알기 어렵다"며 "임금을 더 많이 주는 쪽으로 가지 않았나 짐작하고 있다. 평소 일부 가사관리사가 '제조업 쪽과 임금 차이가 난다'는 얘기를 한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주 30시간 근무만 보장받아 낮은 임금을 받는다는 점이 지적됐지만, 실제 가사관리사 대부분은 주 40시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최저임금을 적용받기에 주 40시간 근무하면 월 206만원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돌봄 노동에 대한 가치가 저평가돼 임금 자체가 낮고, 근로 형태상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시범사업 규정상 최소 근무시간은 주 30시간이나 서울시는 이들의 근로 욕구를 반영해 더 오래 근무하고 싶은 경우 최대한 원하는 근무 시간을 맞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변동이 있긴 하지만 85% 정도가 주 40시간 일하고, 나머지 10명 초반대는 30~39시간 일한다"며 "일부는 주 40시간을 넘어 일하기도 한다. (이용 가정에서) 주말 근무 요청이 들어오면 주말 근무를 원하는 가사관리사에게 매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가사관리사의 이탈 사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낮은 임금 수준과 미흡한 근로 환경 등을 비판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사진=서울시] |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한국과 달리 필리핀이나 홍콩 등의 가사관리사는 가정에 입주해 종일 일하는 시스템으로, 숙식이 열악해도 불안하지 않고 비용도 들지 않는다"며 "병원비도 이용자 가정이 내기에 별도 지출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 오니 서너 시간마다 여러 가정을 돌아다니고, 급여로 받지 못하는 이동시간이 길고 숙식 비용을 직접 부담하는 등 본인들이 알던 시스템과는 다른 형태였을 것"이라며 "이런 불안감이 쌓인 상황에서 급여까지 늦게 나오니, 누군가 접촉해 '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며 제조업 등 다른 일자리를 제안했다면 유혹적으로 들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주민센터 친구 소속 이진혜 변호사는 "안정적 체류 자격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다는 것은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는 의미"라며 "급여가 충분하게 지급되지 않아 소득이 기대보다 적고, 휴식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근무 형태가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범사업 제도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뤄졌다. 이탈 등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업 시행 전 예고했는데도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최 위원장은 "정부는 이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한 채로 외국인력을 데려왔다"며 "(국내 가사관리사) 현장에서는 근로자들이 이동을 계속해야 된다는 점, 이로 인해 휴식 시간이나 휴게 장소가 마땅하지 않다는 점 등을 20년 동안 지적했다. 사업 시행 전 이런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토론회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미리 경고했는데도 개선 없이 (시범사업이) 강행됐다"고 꼬집었다.
이 변호사는 "제도 설계에도 문제가 많다. 가정 내 근무인 만큼 근로감독 등이 부실하기도 하다"며 "파견 형태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많지 않다. 이렇게(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일하는 것은 (정부가) 해본 적 없는 사업을 한 것이다. 기존 돌봄 노동에 대한 가치가 저평가됐다 보니 근로소득도 낮은 편인데 이런 것들이 중첩돼 이탈이라는 결과로 드러났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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