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 미쓰비시중공업 손자회사 상대 1심 승소
"미쓰비시 돈으로 배상받을 길 열려…판결 감사"
금전 채권으로 경매 없이 피해자 측에 지급 가능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을 거부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족이 일본 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을 추심하게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이 손자(孫子) 회사인 엠에이치파워시스템즈코리아(엠에이치파워)에 가지고 있는 채권을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대신 행사할 수 있다고 봤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강제동원 피해자가 추심을 통해 일본 기업의 재산으로 배상받는 첫 사례가 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51단독 이문세 부장판사는 18일 강제동원 피해자 고(故) 정창희 할아버지의 유족이 엠에이치파워를 상대로 낸 추심금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 부장판사는 엠에이치파워가 정씨의 배우자에게 1930여만원, 자녀 5명에게 각 1280여만원 등 총 8300여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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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중공업 로고 [사진=로이터 뉴스핌] |
앞서 정씨는 1944년 미쓰비시중공업 히로시마 조선소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당했다며 2000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정씨는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02년 사망했고 대법원은 2018년 11월 미쓰비시중공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며 최종 승소로 판결했다.
당시 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1인당 1억~1억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은 이행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3월 6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 해법으로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제3자 변제 방식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최종 승소한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본 기업 대신 국내 민간 기업 기부금으로 마련한 배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정씨의 유족은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하고 일본 기업에 직접 책임을 묻겠다며 같은 해 3월 15일 엠에이치파워 자산을 추심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엠에이치파워에 IT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아왔다. 추심금 소송은 제3채무자인 엠에이치파워를 상대로 채무자인 미쓰비시중공업에 지급할 수수료를 채권자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바로 달라는 방식의 소송이다.
이들은 미쓰비시중공업과 엠에이치파워 간 계약을 추적하다 엠에이치파워가 미쓰비시중공업에 줄 돈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2021년 9월 해당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았다.
유족 측을 대리한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나 "제3자 변제라는 반역사적 정책에 반대하는 분들에게 미쓰비시 돈으로 배상받을 길을 열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10번의 변론기일을 통해 소송 채권액을 특정하고 미쓰비시 채권의 실체 확인 절차를 거쳐 저희가 청구한 금액이 모두 인용되는 전부 승소와 가집행이 가능한 판결이 선고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사자가 동의하면 1심 판결로 가집행이 근 시간 내 이뤄질 수 있다"며 "금전이라 경매 등 절차가 필요 없고 바로 돈을 지급받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제3자 변제 방식에 반대하며 정씨의 유족과 함께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해 10월 입장을 바꿔 판결금을 수령하고 소를 취하했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