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민간기업 의사결정에 전례 없이 깊숙이 개입하며 국가자본주의 모델로의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이는 중국이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운용하는 국가주도 경제체제를 일부 모방한 것으로, 미국식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는 지적이다.
WSJ는 최근 사례로 △트럼프 대통령의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 사임 요구 △엔비디아·AMD의 대중(對中) 반도체 매출 15%를 연방정부에 귀속시키는 조치 △일본제철의 미국 US스틸 인수 승인 대가로 '황금주(golden share·한 주만 보유하더라도 중요 경영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갖는 주식)'를 확보한 사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배분하겠다고 밝힌 1조 5000억 달러 규모의 동맹국 투자유치 약속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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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텍사스 공장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품을 보여주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사진=로이터 뉴스핌] |
국가자본주의는 사회주의처럼 국가가 생산수단을 직접 소유하지는 않지만, 명목상 민간기업의 의사결정을 정부가 주도·통제하는 혼합 체제를 말한다. 중국은 이를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 부르며 핵심 산업 육성, 전략적 인수·합병, 금융 배분 등에서 정부 권한을 폭넓게 행사해 왔다. 미국은 아직 중국이나 러시아, 브라질, 프랑스(일부 시기)처럼 국가자본주의를 강하게 실행하는 국가들만큼 나아가진 않았다. 그러나 WSJ는 "이러한 흐름을 '미국 특색 국가자본주의'라 부를 수 있다며, 이는 과거 미국이 구현했던 자유시장 정신에서의 커다란 변화"라고 평가했다.
WSJ는 미국이 국가자본주의로 발을 들인 배경에 대해 "양당 모두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더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기업들이 비용을 아끼려 생산거점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제조업 일자리 감소, 핵심 광물 등 전략물자 대중 의존, 미래산업 투자 부족 등 자유시장에만 맡겨 두기엔 문제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단 설명이다.
연방정부의 기업 경영 개입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나 코로나19 팬데믹, 2008년 금융위기처럼 일시적 비상 상황에 국한됐다. 그러나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 Act) 등을 통해 특정 산업구조를 장기적으로 재편하려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한층 노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반도체지원법으로 인텔이 받은 85억 달러 지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탄 CEO 사임을 요구하는 지렛대가 됐다. 또 바이든 전 대통령이 반대한 US스틸 인수 건을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하는 대신 '황금주'를 확보해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민간기업에 발행을 강제하는 황금주와 유사한 방식이다.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는 겉으로는 고도성장을 뒷받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잉투자·자원낭비·관치금융 등 비효율이 심각하다는 평가다. WSJ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국유·국가통제를 강화하면서 중국 성장률은 둔화했고, 철강·자동차 등 산업은 공급과잉으로 수익성이 급락했다"고 지적했다.
미국도 비슷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전략산업 육성 명목으로 추진된 프로젝트가 폭스콘 위스콘신 공장이나 테슬라 뉴욕 태양광 패널 공장처럼 실패 사례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국가자본주의는 중국처럼 중앙집권적 정치기율이 뒷받침되지 않아, 백악관의 단발성 발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WSJ는 국가자본주의가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 통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에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금융 규제 비판 후 당국 제재를 받은 사례처럼, 트럼프 대통령도 언론사·금융사·법률회사 등 비판적 기업을 행정명령과 규제를 통해 압박하고, 지지 성향 경영진에는 보상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노동통계국(BLS)이나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그간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돼온 기관까지 정치 영향력 아래 두려는 행보까지 보인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의 권력 장악 방식을 오래 전부터 부러워했지만, 미국 민주주의 제도적 견제 장치로 그가 시 주석을 모방하기엔 제한적"이라고 덧붙였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