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서영 기자 = '나는 꼼수다' 팟캐스트가 성행하던 당시, 김어준 씨는 살아있는 권력의 부패를 파헤치던 저격수였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칼날을 겨누던, 수많은 고소·고발과 세간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던, 기득권과 손잡지 않고도 여론을 결집할 수 있었던 사람. 좌파 진영에선 그를 가히 정의의 사도라고 불렀다.
나꼼수 팟캐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게스트가 있었다. 김어준 씨와 환상적인 '캐미'를 보이며 특유의 입담을 자랑하는 인사가 있었으니, 지금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제20대 총선에서 정 대표가 컷오프 됐을 때도 김어준 씨와 정 대표의 의리는 돈독했다. 지지층은 정치적 동반자이자 벚이었던 이들의 관계를 응원했다. 김어준 씨가 당시 읊조리던 '쫄지마 X바' 한 마디에 진보가 열광했던 건, 약자였던 그가 가진 소신이 그만큼 빛났기 때문이다.
그러던 이들이 이제는 '대통령'이라고 불린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은 지난 11일 '삼통(三統)시대'가 열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통령, 여의도 대통령 정청래, 충정로 대통령 김어준을 통칭해 세 명의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비판이다. 장 대표는 민주당 내부 분란을 겨냥하며 "원내대표의 말을 당대표가 뒤집고 당대표는 결국 누군가에 의해서 조종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도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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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박서영 기자 |
지난 10일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특검법 수정안 협상이 하룻밤 사이 뒤엎어졌다. 각 당의 원내대표가 수차례 머리를 맞대 도출된 결론이 정 대표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셈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당이 '상왕(上王)'에게 휘둘린다는 목소리가 분출됐다. 정 대표의 정치적 결단이 유튜브 권력을 손에 쥔 김어준 씨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민주당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은 김어준 씨를 상왕이라고 부른다. 여당 국회의원 백여 명이 그의 유튜브에 출연했고 대통령 비서실장, 국무총리까지 줄줄이 그를 찾았다. 그리고 그의 오랜 동지는 여의도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한때 기득권의 부정부패를 직격하고 정의를 부르짖던 이들에게 야권은 대통령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정부조직 개편과 특검 수정안을 두고 여야 원내대표는 각 당의 가치를 걸고 협상했을 것이다. 하나를 내려놓아야 하나를 얻을 수 있는 협상 테이블에서 이들은 민생과 당익 사이를 오가며 치열하게 논의했을 터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합의안 파기를 두고 "모든 국회 일정 파행에 대해서는 집권여당인 민주당에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하룻밤 사이 협치에서 파국으로 치달은 지금의 입법부는 누구의 책임인가.
이 대통령은 지난 영수회담 자리에서 협치를 강조했다. 야당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겠다고 했다. 언제든 만나 소통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약속한 협치와 소통이 진정 이루어지려면 삼통시대가 저물어야만 한다. 한때, 권력 앞에 쫄지 말자 외쳐줬던 자들의 빛나는 소신이 복원되기를 바란다. 사익에 물든 개인정치가 아닌, 민생을 위한 대의 민주정치가 도래하기를 바란다.
seo0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