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열풍, AI 시대 독서 방식 변화의 신호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최근 예스24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책은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으로 꼽히는 아쿠타가와상의 지난해 수상작인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이다. 스즈키 유이의 장편소설로 유명한 괴테 연구가인 주인공 도이치가 홍차 티백에서 괴테의 명언인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라는 말을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소설이다.

평생 괴테 연구만 했던 도이치가 전혀 모르고 있던 낯선 문장이지만 자신이 주장해 온 이론을 요약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 이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찾아보게 된다. 그는 이 명언의 출처를 찾기 위해 독일로 떠나 괴테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주인공 도이치는 자신을 둘러싼 삶과 학문, 사랑, 인간관계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며, 결국 '모든 것을 말했다'는 괴테의 말 속에서 자신만의 진정한 삶의 답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의 인기 이후 출판계에서 때아닌 괴테 바람이 불고 있다. 현재 1,000쪽이 넘는 '벽돌책'으로 알려진 '괴테 자서전―나의 인생, 시와 진실'(우물이 있는 집)과 '괴테와의 대화 1·2'(민음사)가 12월 셋째 주부터 에세이와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 복귀하면서 역주행 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지난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인기로 시작된 '쇼펜하우어 열풍'과도 맞닿아 있다.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적인 철학관을 바탕으로 위로와 자기 이해를 제공했다면, 괴테는 현실적 삶의 모델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제시한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의 주인공 도이치처럼 독자들은 괴테를 통해 삶에 대한 진정한 해답을 찾고 싶어한다.
출판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독서 방식의 변화를 꼽는다. AI가 요약과 판단을 대신해 주는 시대가 되면서, 오히려 독자들이 더 이상 짧고 인용하기 쉬운 문장에서 나오기를 원한다. 대신 한 인간의 삶 전체를 따라가며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을 찾고 있는 것이다. 도서출판 써네스트의 강완구 대표는 "책 읽기가 SNS에 올릴 만한 문장을 고르는 것에 이제 사람들이 지치거나 식상해 한다"면서 "그래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한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흔들리며 살아왔는지를 깊고 길게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AI가 효율적인 답을 빠르게 제시하는 시대에 독자들이 '괴테 자서전'이나 '괴테와의 대화'처럼 한 인간의 삶과 시행착오를 솔직하게 기록한 책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기계가 내놓는 정답보다, 한 사람이 살아온 구체적인 시간과 선택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생각해 보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괴테 열풍'은 단순한 고전 붐이라기보다, AI 시대에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독서 문화의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로 볼 수 있다. AI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키라는 식의 접근으로는 삶의 비밀을 풀 수 없다는 역설이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oks3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