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외환시장이 진로의 채무 변제를 둘러싸고 우왕좌왕하고 있다.진로의 해외채무 변제와 관련된 달러 수요요인은 지난 7월말부터 꾸준히 제기됐지만 지난주 후반 이래 시장에 본격 재등장했다.특히 하이트맥주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지난 8월 3일 진로 인수 자금을 납입 완료하면서 시장심리를 움켜잡고 있다.진로의 해외채무 변제건은 여름 휴가 시즌을 보내고 있는 현재의 시장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인상이나 중국 위안화 추가절상 얘기보다 실제 수급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변수이다.이에 따라 시장이건 당국이건, 또 시장 동향 파악과 분석 그리고 예측이 필요한 모든 경제주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제나 저제나 학수고대하고 있다.그렇지만 막상 진로 관련 달러 매수 얘기가 아직까지는 현실화되지 않자 시장의 롱세력들의 포지션 운용이 꼬여가면서 착잡한 분위기도 감지되는 상황이다. ◆ 진로 채무변제 이번주 마칠 예정, 골드만삭스 시장에 언제 등장할까 먼저 사실관계를 잡아 보자면, 진로의 국내외 채무 변제는 이번주 안에 모두 완료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진로측 관계자는 "현재 채권단들로부터 구체적인 액수와 증명 서류 등을 받고 있다"며 "이번주, 오늘이나 내일쯤이면 채무변제가 끝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특히 자금 변제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진로 자금팀과 함께 산업은행의 M&A실, 우리은행 등이 이와 관련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포착되고 있다.산업은행은 하이트맥주와 함께 진로 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했으며 인수자금 조달은 물론 인수자금 계좌를 제공함으로써 자금이동 창구역할을 하고 있고, 우리은행은 예전 진로의 주거래은행이었다.진로의 국내외 채무 변제 총액은 3조여원으로 이중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도이치방크 등 해외채무(국외 거주자) 비중이 70% 수준으로 2조여원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골드만삭스 등이 보유하고 있는 진로 채권은 당시 자산관리공사 국제입찰 등을 통해 원화 기준으로 사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산업은행이나 일부 시중은행들이 진로 관련 매수세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면서도 "그러나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겠다"고 말했다.이어 그는 "일부 진로 관련 매수가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며 "여하튼 골드만삭스가 시장에 본격 모습을 드러내는 게 신호탄일 것"이라고 말했다.다른 외국계 은행 딜러는 "골드만삭스가 시중은행들한테 경쟁입찰을 붙였다는 얘기가 있다"며 "그러나 역외가 매도세를 보이고 골드만삭스도 시장에 본격 출현하지 않아 이미 일부 환전하지 않았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고 말했다.또다른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일부 시중은행들을 중심으로 롱플레이를 하는 것 같다"며 "아직은 시장에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가 붙었다는 얘기는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진로의 부도, 그리고 골드만삭스의 진로 채권 인수 과정 현재 법정관리 중인 진로의 채무, 특히 해외채무의 연원은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때까지 거슬로 올라간다. 지난 1997넌 1월 한보그룹의 부도로 촉발된 이후 기아, 대우사태 등으로 이어지는 국내 재벌그룹들의 연쇄 부도, '대마불사 신화의 붕괴사' 속에 진로도 포함돼 있는 것이다.당시 30대 재벌 중 20위권에 속해있던 진로는 1997년말께 과다채무를 견디지 못하고 부도가 났으며 그 이후 법정관리 신청한 바 있다.IMF 구제금융을 받은 정부가 1998년 50여조원에 달하는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조성했고, 성업공사에서 이름을 바꾼 자산관리공사가 은행들이 보유한 기업들의 부실채권을 본격적으로 사들이는 과정에 진로 채권도 포함됐다.자산관리공사는 국내에서 부실채권 매각이 수월치 않자 당시 정재룡 사장 주도로 국제입찰을 첫 실시했고, 골드만삭스, 시버러스 등 해외기관들이 자산관리공사의 국제입찰을 통해 한국의 부실채권시장에 진입했다.당시 골드만삭스는 부실채권 인수 담당 임원을 미국 본사에서 서울지점에 파견하는 등 한국의 부실채권시장에 적극적으로 참가했으며, 국내은행들도 자산관리회사(AMC)를 만들어 부실채권정리에 나선 바 있다.골드만삭스 등이 한국의 부실채권시장에 적극 참여한 것은 한국이 1998년 4월 IMF와 씨티그룹 등의 지원을 받아 외평채 40억달러를 성공리에 발행하는 등 안정감을 찾아가는 데다 정부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이같은 일련의 사태와 사건은 당시 로이터통신에서 '국내 IMF 위기 현장'을 경험했던 기자의 파일과 기억 속에, 그리고 한국의 경제사 속에 고스란이 보존돼 있다. ◆ 골드만삭스 '초특급 대박', 진로와 골드만의 악연도 종결 한편 골드만삭스는 진로가 채무를 온전하게 변제하게 됨에 따라 이른바 '초특급 대박'을 맛볼 것으로 보인다. 모건스탠리 등 여타 해외채권자들도 수혜를 보게 되지만, 특히 골드만삭스는 초기 한국의 부실채권시장에 진입하면서 '헐값'에 부실채권을 인수했고 환율도 크게 하락한 뒤여서, 좋게 말하면 초기 모험자들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을 얻은 셈이다.골드만삭스는 진로의 채권자로서 경영 문제나 노조 등과 부딪힌 경험을 갖고 있어 이번 인수로 해서 진로와 골드만삭스간 '악연'도 끊어지게 됐다.아무튼 골드만삭스 등이 진로 채무를 변제받을 경우 최대 4배 이상의 '투자이익'(Capital gain)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당시 자산관리공사의 국제입찰 결과, 즉 낙찰가격은 원본 채권을 기준으로 했을 때 초기 20~30%에서 형성됐다가 나중에는 60~70% 수준까지 올라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초기에는 한국이 IMF 위기 상황에 처한 상황이어서 국제입찰 참가자가 적었고 국제입찰 성사를 위해 정부 등이 나서서 해외투자은행들한테 입찰 참가를 '부탁'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낙찰가격이 매우 낮았다. 그렇지만 이후 한국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대내외적으로 '한국 정부 보증 부실채권'으로 알려지면서 '안정성'이 높게 평가되면서 국제입찰 참가자도 늘고 낙찰가격도 상승했다.국내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골드만삭스 등 해외채권단의 진로 부실채권 인수가격은 액면채권대비 20~30% 정도밖에 안됐다"며 "이는 100원짜리 채권을 20~30원에 인수한 것이어서 만약 이번에 2조원을 변제받는다면 단순 계산상으로 1조5,000억원 안팎, 3~4배 가량의 이득을 보게되는 셈"이라고 말했다.이어 그는 "물론 진로 채권이 모두 20~30%에 인수된 것은 아니고 또 해외기관별로 가격대도 달랐을 것"이라며 "그렇지만 진로 채무 변제를 받게되면서 해외투자자들이 엄청난 이득을 보게 된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뉴스핌 Newspim] 이기석 기자 reuh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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