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에 정책리스크가 누적되고 있다.
환율하락에 맞서 정부가 안정대책을 여러개 묶어 내놨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단 발표부터 하고 보자' 식의 설익은 대책이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또 이를 기대했던 세간의 눈길 또한 곱지 않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9일 "올해 경제운용방향에서 밝힌 엔/원 직거래 시장 재개설 여부에 대해 다각적인 검토를 한 결과 현재로서는 어 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시장의 유동성이 너무 부족해 달러/원이나 달러/엔 시장에 흡수돼 버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는 정부가 굳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외환시장 참가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재경부가 '엔/원 시장 재개설'을 검토하겠다고 하니 시장 사람들은 "정부가 어떤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 것은 아닌가" 반신반의의 눈초리로 관심있게 지켜봐 왔다.
◆ 엔/원 시장 '예상대로' 무산
그러나 결론은 시장과 주변의 예상대로 '회복 불가능'이었다. 보기에 따라서, 기대만 잔뜩 부풀려 놓고 풍선을 터뜨린 격이 돼버렸다.
재경부도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재개설을 기정사실화하고 검토한 것은 아니다"며 "각종 경제연구소와 무역업체, 국회 쪽에서 워 낙 강하게 요청해 검토에 들어갔다"고 배경 해명에 중점을 뒀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해명은 다소 궁색한 측면이 있다.지난 1월 '2007년 경제운용방향'에서 최초 이 내용을 발표했던 당시에는 매우 긍정적인 언급을 해 놓았기 때문이다.
당시 발표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면, 재경부는 "1996년 당시보다 달러화에 대한 선호가 하락함에 따른 엔/원 거래 증가의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국내에서 엔화를 중심으로 한 경상금융거래가 확대되고 원화의 국제화가 진전될수록 재개설 필요성 확대가 가능하므로 96년 당시의 거래부진 요인을 현 시점에서 재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재개설 기대를 갖기에 충분한 문구들이다.
(이 기사는 11일 오전 11시 53분 뉴스핌 유료회원들께 송고된 바 있습니다.)
◆ 정책 수용 노력 긍정적, '정책 끼워팔기'는 곤란
정책당국이 관련 현안을 점검하고 정책으로 수용하기 노력은 긍정적이고 이는 언제든지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엔/원 시장 부활이 무산된 전후 사정을 보면, 연초 환율하락 상황을 모면코자 해외투자활성화 대책과 함께 이 대책을 포함한 것은 일종의 '정책 끼워팔기'가 아니었나 하는 비판을 모면키 어렵게 됐다.
대책 발표 당시 외환당국은 두 달여만에 40원 넘게 떨어진 환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환율 하락 이유가 달러/엔 환율의 상승에 따른 엔/원 환율의 자동 하락 영향이 컸기 때문에 엔/원 대책 마련에 대한 각계의 압력이 컸다.
따라서 엔/원 재개설 검토는 "정부의 환율방어 의지가 이처럼 강하다"는 것을 시장에 보여주는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내부적으로 검토하면 될 것을 굳이 공표했다는 점에서 다른 목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월 대책 발표 직후 재경부 한 관계자는 "재개설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말한 바 있다. 전세계적으로 이종통화 직거래시장은 유로/엔 시장 하나밖에 없으나 "수출업체들이나 연구소에서 워낙 강하게 얘기하니까 이 참에 종합 검토해서 나중에 다른 말이 안나오도록 할 생각"이라는 것이다.
재경부는 선입관 없이 검토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선입관이 있었던 셈. 그럼에도 대책에 포함됐다는 것은 '높은 분'의 지시가 있었거나, 전시효과를 노린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게다가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개설될 것처럼 약간 부풀린 측면까지 있다.
◆ 단기 일시 효과보다는 정책 신뢰성을 제고가 더 중요
이 같은 사례는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다.
올 1월 환율안정대책으로 '해외투자활성화 대책'을 내놓았을 때도 역외펀드 비과세 문제가 논란 끝에 무산된 바 있다.
피델리티 쪽에는 마치 비과세가 허용될 것처럼 신호를 보냈다가 최종적으로는 불허 방침을 내리면서 소비자들의 펀드 갈아타기를 촉발시켰다. 역내 해외펀드도 국회 통과가 난망이란 소식이다.
정부가 환율 안정화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논란이 있는 정책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정책 투명성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급한 김에 충분한 검토 없이 너무 설익은 대책을 내놓거나 덧붙이기식 부수 효과를 노리고 대책들을 내놓을 경우 시장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어느덧 24시간 체제로 바뀐 외환금융시장이 실시간 팍팍 돌아가고 시장 참여자들이 외환당국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상황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정책 내용과 함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정책의 신뢰를 가름하는 척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 90년대에도 해봤지만 엔/원 시장은 시장 자체 기반이 취약해 시장화하기 힘들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라며 "수출업계의 주장을 수용했다고 하지만 환리스크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 업체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외환당국이 환율안정대책의 필요성 때문에 시장에 목소리를 더 내려했던 점도 있다고 봐야 한다"며 "어떤 정책도 마찬가지지만 외환정책도 시장과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해야 정책 성과도 신뢰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