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기 유동성 지원방안, 그러나 단기 자금으로 장기운용 부담
[뉴스핌=원정희 기자] 시중자금들이 은행으로 유입되고 있지만 은행들은 자칫 원화유동성이 부족해질까 우려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이 자금들이 언제 은행에서 빠져나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식시장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거나 부동산 관련 규제완화로 단기자금으로 묶어 놓은 돈을 빼 내 이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면 은행으로선 현금흐름에 미스매칭(만기 불일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 단기부동화 심화
2일 금융계에 따르면 자산운용협회가 집계한 MMF잔액은 지난해말 46억7383억원에 불과했으나 올 9월말엔 62조9953억원으로 무려 34%(16조2570억원)나 불어났다. 지난 8월말엔 75조621억원까지 치솟았다.
은행들의 1년 미만의 단기예금인 시장성예금(CD, RP, 표지어음)도 늘어나는 추세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24조406억원에서 올 9월말 33조6954억원으로 1년도 안돼 10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위 그래프 참조>
우리은행도 지난해 말 17조316억원에서 18조2181억원으로 늘어났다. '
신한은행은 지난해 12월 19조2257억원에서 지난 7월말 19조9017억원으로 늘어났다가 차츰 줄어들어 9월말엔 18조6103억원으로 다소 빠졌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말 10조3950억원에서 올 3월말 9조1400억원까지 빠졌으나 점차 늘어나면서 9월말엔 14조1514억원으로 확대됐다.
경제, 금융시장이 불안정하면 시중자금들이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잠시 예치해 놓는 MMF나 은행의 3개월, 6개월 등 1년미만의 단기성 예금에 돈을 넣어 두고 언제라도 빼 갈 수 태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단기부동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언제 빠져나갈지 모르니 자금 담당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대형 시중은행 한 자금담당 부장은 "기관들은 1개월, 3개월 등 초단기성 자금으로 관리하고, 개인들도 특히 돈 많은 고객들은 1년 이하의 단기예금으로 운용하고 있다"며 "부동산 규제 완화 등으로 자금이 언제 빠져나갈지 몰라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특히 지난 7월부터 조달의 한 축인 금융채에 대해 발행 공시제도가 도입되면서 은행 입장에선 더욱 부담이라는 것이다.
◆ 원화유동성, 안심할 순 없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은행에 자금은 풍부하지만 언제 떠날지 모르는 돈이라 자칫하면 은행 캐쉬 플로우(현금흐름)의 미스매칭(불일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증권사들도 리먼사태로 유동성 우려가 있었고, 최근 홍콩에서도 소문 때문에 '뱅크런(예금인출사태)'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냐"며 "우리도 아직 미실현이지만 파생상품 문제, 건설사PF, 중소기업 부실, 가계채무 등의 문제가 부각되면 상대적으로 은행이 안전하다고 해도 예금자 입장에서 불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콩 3위 은행인 이스트아시아은행에서 '악성루머'만으로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첫 뱅크런 사태가 발생한 것 처럼 현재와 같은 국제금융 상황에선 은행 자체가 건전하다고 해도 대중들의 불안심리, 불신감이 커지면서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처럼 국제금융시장의 경색이 오래 지속되면 외화든 원화든 현금확보가 중요한 때라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의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방안이 발표되면서 은행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은행 수신 및 조달이 단기화되면서 장기 대출로 운용하는데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만기 미스매치에 대한 우려와 함게 기업에 대한 자금중개 축소로 실물부문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한 관계자도 "2금융권의 단기자금이 은행으로 들어오고 있어 내부적으로 이를 어떻게 할지 고민들이 많지만 언제 빠져나갈지 모르는데 대출로 운용하는게 힘들다"고 토로했다.
결국 고금리 정기예금 특판 등으로 안정적인 수신 고객을 확보하는 수밖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 고금리 예금 만이 유일한 대안…밑천 궁핍
단기자금이라도 오래 붙들기 위해 우리은행은 하루만 맡기면 연 4%, 100일 넘게 예치하면 연 5.5%를 주는 '고단백 MMDA' 상품을 1일 내놨다. 아울러 지난 9월23일엔 모집금액에 따라 최고 6.7%의 금리를 주는 '우리e-공동구매정기예금'을 총 1000억원 한도로 팔고 있다.
신한은행도 인터넷 전용 고금리 유동성 예금인 '신한 다이렉트 통장'을 9월말 출시했다. 최고 4.2%의 금리를 준다.
이같은 분위기에 국민은행도 KB금융지주 출범에 맞춰 오는 11월 28일까지 'e-파원정기예금' 가입고객에게 최고 0.6%포인트의 금리를 더 주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1년 기준으로 연 6.6%의 금리를 받을 수 있고 가산금리가 추가되면 최고 연 6.9%까지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