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img.newspim.com/2010/07/1278416844.jpg)
조 회장의 사의 표명에 대해 재계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재계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셨다"며 "전경련 수장으로 좀더 활동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지난 2007년 3월 전경련 회장에 선출된 직후 취임일성으로 "회장들 일정이 바빠 모두 모이지 못하면 찾아가 의견을 듣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후 자신의 약속대로 재계 회장들과 적극적인 스킨십 행보를 보이며 전경련 회장단을 실질적인 재계 대표 모임으로 부활시켰다.
◆ 공학도에서 경영인으로
조 회장은 재계에서 ‘전문성과 학식을 갖춘 CEO’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전경련 회장을 맡아 국내 재계의 중심 지도자로 입지를 굳혀왔다.
기업 경영활동 못지 않게 자타가 공인하는 ‘민간경제외교관’으로도 오랜동안 활동했다. 그가 맡았던 대외직책만 해도 한일경제협회 회장, 한미재계회의 한국측 위원장, 한일 산업기술협력재단 이사장 등 10여개가 넘어간다.
조 회장은 1935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했다. 경기고(50회)를 나와 일본 와세다대,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다.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중 부친인 효성그룹 창업주 고 조홍제 회장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1966년부터 경영에 참여했다.
효성물산 관리부장을 거쳐 1966년 11월부터 효성그룹 성장의 발판이 된 동양나이론의 건설본부장직을 맡아 경영 전면에 나섰다. 공학도에서 경영인으로 새 삶을 살게 된 시점이다.
당시 울산공장 건설을 진두지휘하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조 회장은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 1975년 효성중공업을 설립하면서 효성그룹을 국제적인 규모의 회사로 성장시켰다.
1981년 효성그룹 회장에 공식 취임한 뒤 지금까지 사업다각화와 끊임없는 경영혁신으로 재계의 중심을 이끌고 있다.
조 회장은 전경련 회장직을 수행하면서도 '오너 회장'이라기보다는 '전문경영인'에 가깝게 분주히 움직였다. 2007년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이후 재계의 화합과 전경련의 위상 제고를 위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 논리적 사고방식, 원칙 실천
조 회장이 이 같은 신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평소 그의 학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과 맥을 같이 한다.
조 회장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철저한 사전조사는 물론, 일의 결과와 전개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행에 편승하거나 의욕만을 앞세운 경영보다는 윤리적이고 철저히 원칙에 입각한 경영을 실천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일본 등 해외 경제석학들의 경영관련 서적을 많이 읽는 ‘독서광’으로 유명할 정도로 학구적인 스타일이기도 하다.
조 회장은 국내 재계의 대표적인 ‘국제경제통’으로도 손꼽힌다. 일본과 미국 등에서 유학시절을 보낸 탓에 재계뿐만 아니라 정계와 학계 등 다양한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전경련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지구를 7바퀴나 도는 의욕적인 경제외교를 펼쳐왔다.
전경련 관계자는 "국내 경제활성화와 위기 극복을 위해 앞장서 왔다"면서 "민간 경제외교 사절로서 한․미 FTA, 한․EU FTA 등의 성사를 위해 총 130일간 30회에 걸쳐 지구를 7바퀴나 돌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