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사헌 기자] 보통은 상대적으로 위기에 대한 대응이 늦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은행(BOJ)이 이번에는 달랐다.
최악의 지진 사태로 인해 일본 열도가 타격을 입은 직후 BOJ는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 동안 42조 엔에 달하는 막대한 유동성을 투입했을 뿐 아니라, 5조 엔을 들여 국채 및 금융자산을 추가로 매입하기로 결의했다.
이 같은 BOJ의 신속한 결단은 달러/엔이 80엔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았을 뿐 아니라, 금융시장의 동요도 제한하는 효과를 본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지난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위기를 넘어 서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전력 제한 조치로 인해 당분간 경제활동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보니 추가 경제 지원책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파인낸셜타임스(FT)는 지난 15일자 기사에서 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ㅇ, 조만간 엔화가 80엔 선을 위협하면서 사상 최고치로 접근할 경우 중앙은행과 정부의 시장 개입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UBS의 만수르 모히-우딘 외환전략가는 "중앙은행이 방대한 유동성 공급와 추가 완화정책 등으로 엔화 절상을 성공적으로 막았다"고 평가하면서도 "글로벌 외환시장은 계속 엔화 강세 쪽을 밀고 있기 때문에 필요할 경우 자금시장과 외환시장에 개입할 태세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수 분석가들은 달러/엔이 명목 기준으로 사상 최저치에 접근하고 있어 앞으로 수 개월 내에 일본 외환당국은 해외로부터의 자금송환에 따른 엔화의 급격한 절상을 막기 위해 개입에 나서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맥쿼리증권의 수석 아시아 담당 이코노미스트인 리처드 제람은 "이번에 결행한 것처럼 자산매입 기금을 더 늘리는 식으로 집중하고 자산가치를 부양하는 것이 한 가지 옵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외의 선택 가능한 대책으로는 적자 국채 매입을 통한 재정적자의 화폐화가 있지만, 이는 법률 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고 또한 중앙은행이 적극 추진할 이유가 없는 수단이다.
일본 정부는 당장 이번 회계연도 예산 중 남겨 둔 임시 재정기금을 위기 대응으로 활용하면서 추경예산을 편성할 방침이지만, 아직 피해 규모 등이 제대로 파악되지 못해 이번 달 안으로 편성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추경의 규모는 1995년 고베 지진 때의 9.9조엔 수준을 크게 뛰어 넘을 것으로 예상되며, 정부 당국자들도 규모가 과거보다 클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이번 지진의 규모와 원전 사고를 감안하자면 일본 정부나 중앙은행은 조만간 추가적인 경기 부양책을 단행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일단 먼저 대응에 나선 BOJ로서는 정부의 다음 조치를 일단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다우존스통신은 16일자 기사에서 "이번 일본 재난 사태로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긴축 기조 전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1979년 스리마일섬 사고와 같이 피해를 억제하고 해결될 수 있는지 아니면 1986년 체르노빌처럼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원전 사고는 세계 에너지공급에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경제성장에 타격을 입히는 것은 물론, 인플레이션 위험까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높이는 것이란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도이체방크의 G10 외환전략 담당인 앨런 러스킨은 "스위스와 독일이 원전 계획을 재고하고 있다는 소식 등 전 세계적으로 이런 추세가 뒤따르면 유가가 폭등하고 세계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어 중앙은행들의 전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단 일본 위기 발생 이후 유가는 계속 하락하고 있지만, 원전 폐쇄 시 10만 배럴 추가 수입 수요가 발생하고, 또 중동 불안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유가 하락은 지속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다.
나아가 에너지를 포함한 금융시장의 움직임도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이 중앙은행으로서는 대응이 쉽지 않은 대목이라고 러스킨 전략가는 지적했다.
그는 "가장 주목되는 것은 최근 긴축으로 전환을 선언한 유럽중앙은행(ECB)의 태도"라면서 "4월 정책 회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BNP파리바 등 일부 금융기관의 애널리스트들은 4월 기준금리가 1.25%로 25bp 인상 가능성을 이미 반영하고 있고 연말까지는 2%까지 인상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런 변화는 아직은 가능성이기 때문에 변수에 따라서는 충분히 유연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CB 외에도 에너지 및 상품 가격 변화에 민감하며 또한 일본 경제와 밀접한 호주 연방준비은행의 금리 전망도 일본 위기 사태로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호주는 이미 긴축 기조로 전환한 상태지만, 일본 사태 등을 감안할 때 긴축 기조가 너무 강하다는 판단과 함께 한 걸음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고 ING파이낸셜마켓의 외환전략가 크리스 터너가 주장했다.
화요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경기 회복세가 지속되고 있음을 강조해 추가 완화정책은 없을 것임을 시사했지만, 역시 일본 재난 사태에 대해 지적한 가운데 양적완화 정책과 초저저금리 정책을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 회복에 제동이 걸리고 무엇보다 일본이 빠르게 부활하지 않는다면 미국 연준의 정책 정상화 일정도 늦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씨티그룹의 외환전략가는 고유가가 세계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연준의 정책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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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