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문형민 기자]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유럽의 재정위기가 촉발한 글로벌 금융불안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와 다르다고 진단했다.
금융기관 도산, 전면적 신용경색 등이 나타나지 않아 실물부문으로 빠르게 전이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 하지만 2008년과 같은 신속 과감한 금융 및 재정정책 여력이 거의 없다는 점은 우려할 문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2일 '최근 경제상황 점검과 한국의 대응'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최근의 상황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와는 위기의 성격과 대응 능력 측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고 밝혔다.
우선 위기 성격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2008년에는 금융기관 부실에 따른 금융충격이 글로벌 신용경색을 초래해 실물경제로 빠르게 전이됐다. 미국 주택시장 침체로 주택 모기지와 관련 파생상품의 손실이 크게 확대됐고, 이로인해 세계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베어스턴스, 리먼브러더스가 도산하고 씨티그룹, AIG에 긴급 구제금융이 투입됐다. 금융기능의 마비는 실물부문으로 즉각 옮겨가 세계경제 성장률이 2008년 3분기 1.6%에서 4분기 -1.1%로 급락했다.
반면, 최근 상황은 유럽발 재정위기로 미국, 유럽 은행의 부실화 우려가 고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금융기관 도산, 전면적인 신용경색 등 금융위기가 전개되지는 않고 있다.
대응능력에서도 차이가 있다. 2008년에는 세계 각국이 신속·과감한 금융 및 재정 정책을 통해 경기 부양을 추진했다. 2008년 10월부터 6개월간 미 연준과 ECB는 각각 3차례와 6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0∼0.25%, 1.25% 수준으로 인하하고, 장기채권 직접 매입, 담보대출 확대 등으로 유동성을 공급했다. 국제사회는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 확대 등 정책공조를 강화하기도 했다.
지금은 경기부양을 위한 금융 및 재정 정책 여력이 거의 없다. 유럽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재정건전화가 절실한 상황이라 재정 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은 내년부터 2021년까지 최소 2조 달러 규모의 재정지출을 감축해야한다. 이미 초저금리 기조가 지속돼 금리인하 여력도 없고,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양적 완화도 곤란하다. 여기에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환율 갈등 등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정책 공조도 소극적이다.
연구소는 "위기가 다시 발생하면 실물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연구소는 대외여건 변화의 3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확률 70%로 가장 가능성 높다고 지목한 시나리오 1은 유럽 재정위기가 크게 악화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리스의 자구노력과 유로존 내 사전 대비책으로 '질서있는 그리스 채무조정(Orderly Defaultor Restructuring)'이 진행되는 것을 가정한 것. 이 경우 금융시장의 불안이 지속되나 유로존의 유럽 금융기관 지원 등으로 심각한 신용경색 등 금융위기는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시나리오 2는 그리스가 디폴트와 유로화 탈퇴를 선언하나, 유로존과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응으로 스페인, 이탈리아가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파국은 차단되는 상황. 유럽 은행에서 뱅크런이 발생하고 일부 은행이 도산하는 등 금융불안이 확대될 수 있다. 다만 유로존 회원국 및 국제사회의 공조 강화로 유럽 중심국인 스페인, 이탈리아 등으로 전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가장 희박한 가능성의 시나리오는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이후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 위기가 확산되고 유로화 해체 논의도 본격화되는 상황이다. 이 경우 유럽 은행의 도산, 글로벌 신용경색, 신흥국 외환위기 등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연구소는 "한국경제가 2008년과 같은 금융위기에 직면하고 경기가 급랭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사전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단기적으로 ▲ 미국, ECB와의 통화스와프 체결 ▲ 미국, 유럽 등에서 중동, 아시아 등으로 차입선 다변화, 중장기적으로 ▲ 과도한 자본유출입 억제 ▲ 글로벌 금융안전망 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연구소는 아울러 기업은 환율급등에 따른 리스크를 재점검하고, 신용경색에 대비해 금융권 및 대형 거래선의 재무 안전성 파악에 만전을 기해야 한편 수익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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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문형민 기자 (hyung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