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신당 당협위원장 연석회의서 대선출마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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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진보신당 대표.[사진: 홍세화 홈페이지] |
홍 대표는 1일 서울 정동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진보신당 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 참석해 "저 자신도 당에서도 대선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했지만 필요하다면 사회연대후보 경선에 몸을 내던지는 것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대선을 100일 정도 앞두고 보면 우리 현실은 어렵다"며 "우리가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우리의 행보가 잘못 되었는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사회연대후보라는 이름으로 당 차원 후보를 선출하지 않고 배제된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확장하기 위해 진보신당이 밀알이 되겠다고 말했다"며 "다른 곳에서도 노동자민중 후보를 말하고 있으나 야권연대 흐름 속에서 그걸 교두보로 이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진보신당이 독자후보를 내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대선에서 우리 자신을 던질 수 있다면 그 출발은 각 지역의 당협이라고 본다"며 "당원들의 사기와 역량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모아낼 수 있느냐가 문제다. 여러분도 스스로 좀 더 적극적으로 대선에 힘을 모아가는 출발지점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당원들의 지지를 부탁했다.
앞서 진보신당은 지난달 21일 진보좌파세력만의 대선후보를 내야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진보신당은 당시 기자회견문에서 "자체적으로 대선후보를 선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진보진영 단체들을 향해 "다가올 대선에 나설 사회연대후보를 공동 대선운동기구가 조직하는 민중 선거인단 완전경선으로 선출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자유주의 야당과의 연합정치를 숙주 삼아 권력 주체의 일부분이 되거나 그것을 자신들의 정치적 생존의 원리로 삼으려 한 진보정치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난 홍 대표는 1966년 서울대 금속공학과에 입학했다가 자퇴한 후 1969년 다시 서울대 문리대 외교학과에 입학했다. 1972년 민주수호선언문 사건으로 재직된 후 1977년 졸업했다. 1979년 무역회사 해외지사에 파견됐다가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에 연루돼 귀국하지 못하고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후 택시운전 등을 하며 망명생활을 하다 2002년 1월 영구 귀국했다.
이후 한겨레신문 기획위원과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등을 지냈으며, 지난해 11월 당원으로 있던 진보신당 연대회의의 제4기 당대표단 선거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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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