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재계의 많은 기업들이 글로벌 불황과 엔화 약세(엔저)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고심 중이다.
엔저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실적 악화뿐 아니라 해외 거래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크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부 기업은 오너 부재로 인해 추진력마저 급격히 떨어지면서 어둠이 짙게 드러워진 상태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을 굳이 구분하지 않더라도 세계무대에서 뛰는 우리 글로벌 기업 선수들 대부분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내외 경영여건이 현재로도 심각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더욱 큰 우려감으로 다가온다.
단적으로 엔저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최근 일본은행(BOJ)이 60~70조 엔 규모의 유동성 공급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격적인 양적완화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제2차 엔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조만간 110엔 수준을 보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면서 국내를 대표하는 삼성전자는 물론 현대차, 포스코(POSCO) 등 업종별 주요 기업 모두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한 증권사의 조사 결과, 엔·달러 환율이 95엔에서 110엔으로 오르면 국내 주요 상장기업 43개사의 총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81%, 2.77% 감소한다.
우리 기업들이 몸으로 느끼는 원화 강세(원고)의 압박감은 상당하다. 코트라의 한 관계자는 "원고 현상으로 우리 기업들이 해외 거래선에게 납품가격 인상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제품 경쟁력으로 아직까지는 거래를 유지하고 있지만 장기화될 경우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업체나 저비용 구조의 중국업체들로 거래선 변경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산업계 일각은 한국은행이 너무 안일하게 두 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니냐고 불만을 나타내기도 한다. 한은은 엔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 수출기업들이 견딜만하다고 보는 상황이다.
제품 경쟁력에서 차별성이 있기 때문에 환율 문제로 바로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하지만 산업현장에서는 당장 주요 수출기업의 실적에 큰 변화가 없다고 문제 인식을 너무 안일하게 가져가면 안된다는 지적이 높다. 수익성 하락이 장기간 이어지면 해외 투자자들이 등을 돌릴 수 있고, 결과적으로 기업과 제품의 브랜드 인지도에도 흠집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수출 대기업 관계자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시장 관련 이해관계자가 우리 기업과 제품에 대해서 꾸준한 신뢰를 보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증권가도 우리 기업에 대한 투자 매력도 저하를 우려한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은 "한국 기업의 미래에 대한 외국인의 전망이 바뀌면서 아시아시장 내에서의 (투자) 매력도가 하락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우리 자동차 산업이 정말 토요타나 폭스바겐과 대비할 때 경쟁력이 있는지에 대해 외국인이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사실 정부의 경제민주화 화두나 창조경제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이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 현재의 우려를 벗어나기 위한 선택은 결국 국내 비중을 줄이고 환위험이 덜한 해외에서의 직접적인 생산·판매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현대차의 경우만 보더라도 원가절감 노력 등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이어가기는 한계점에 다다라 있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차는 엔저 영향과 글로벌 여건이 괜찮은 해외공장의 생산을 늘리고, 이를 직접 해외시장에서 판매하는 변화를 모색 중이다.
국내에서의 수출 비중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면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 확보는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 생산분이 감소하면 장기적으로 그에 따른 투자나 고용의 질은 떨어지고 협력사들에게도 그 여파는 고스란히 미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편,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부 기업들은 오너 부재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빠른 의사결정은 물론 추진력마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엔저 공습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위기를 돌파할 주요 사업적 선택에서 결정권자의 부재가 큰 경영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한 대기업 관계자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오너 부재까지 겹쳐 경영불안은 더욱 가중되고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