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가격 폭락 '고사 위기'...정책변화 필요 지적도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환경보호의 기치를 들었던 유럽연합(EU)이 경제난 속에서 위축되고 있다. 특히 이를 위해 출범했던 탄소배출권 거래제도(Emissions Trading Scheme, ETS)는 붕괴 위기까지 처했다. 공장이 덜 돌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GHG) 발생 자체가 줄면서 탄소배출권 시장에 공급만 넘치고 수요가 급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탄소배출권 시장을 인위적으로 살려야 한다는 개혁안까지 나왔지만 지난 16일(현지시간) 유럽의회는 이 개혁안을 부결했다.
이를 계기로 유럽의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환경 보호를 위한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온실가스 감축은 당위이긴 하지만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보다 당장 살기 어려운 지금은 정책적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란 것이다.
◇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 '붕괴 위기'
ETS의 핵심은 탄소 배출량에 일정한 비용을 부과해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데 있다. 차에 기름을 넣을 때 기름값을 내는 것처럼 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비용을 내도록 하는 것.
유럽연합(EU)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ETS)가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출처=영국 이코노미스트) |
이런 시장 원리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 자체를 줄일 수 있고, 또 초과해서 감축했을 경우 판매도 가능해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유럽의 경제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공장이 덜 돌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온실가스 발생 자체가 줄었고, 이에따라 탄소배출권의 공급만 크게 늘어 수요를 압도하다보니 배출권 거래시장이 고사지경에 이르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사전에 이미 배출권을 많이 할당해 놓은 것도 문제다. 5년 전 톤당 최고 30유로까지 달했던 탄소배출권 가격은 최근엔 3유로 밑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탄소배출권 시장의 큰 손들도 하나둘 투자를 거둬들이고 있다. 도이체방크와 크레디 아그리콜, MF글로벌, 캔터 등이 이미 거래를 중단했고, 스위스 마바나프트도 곧 투자를 중단할 계획이다. 바클레이즈와 모간스탠리 등도 최근 몇 년간 투자를 크게 줄였다.
◇ "오히려 석탄 발전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럽은 오히려 화석연료 가운데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발생시키는 석탄 사용에 더 매달리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고 20일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경제난 때문에 지출을 줄여야겠고 석탄 가격은 때마침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석탄 가격은 고속 성장을 하던 중국이 다소 주춤해지면서 수요가 줄고 미국에선 셰일가스 붐이 불면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출처=내셔널 지오그래피) |
영국 가디언은 한 전문가를 인용, "ETS가 향후 수 년간 탄소배출을 줄이는데 있어서 적절하지 않은 수단일 것"이라면서 EU ETS 3기(2013~2020) 동안 이 시장을 살리기 위한 어떠한 정책적 개입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2020년까지 탄소배출권 가격은 현재의 3달러 수준을 회복하기는 커녕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 에너지 정책의 획기적 변화 필요할 수도
이런 모습은 유럽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영국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여지껏 첫 번째 신 원자력 발전소 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으며, 청정 에너지에 열정적으로 매달렸던 스페인은 풍력 및 태양력 발전 지원을 크게 줄여버렸다고 전했다. 유틸리티, 제조업체들은 청정 연료로 갈아타기 위한 신 기술에 투자할 돈이 더 이상 없는 상황이다.
NYT는 어떤 면에서 유럽은 스스로의 성공에 희생양이 된 셈이라고 봤다. 유럽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능가하는 미래 연료 개발에 있어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뤘다. 지난해 유럽 전력 수요의 23%는 풍력과 태양열 같은 재생 에너지로 충당됐다. 2002년 13%에서 크게 오른 것. 하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 문제가 초래됐다.
대부분의 청정 전력원은 비싸기 때문에 석탄, 천연가스 등과 경쟁하기 어렵다. 그래서 보조금이 필요하다. 그러니 결국 청정 전력을 더 많이 생산할 수록 더 많이 비용이 들게 된다. 일례로 영국은 법을 통해 전기요금을 올려 신재생에너지 투자 자금을 만들고 있어 서민 부담이 커졌다.
영국의 에너지 관련 소비자 조언단체인 u스위치의 앤 로빈슨은 "모든 에너지 정책들이 재고될 필요가 있다"면서 "검증되지 않았고 막대한 비용이 들어나는 해상풍력 발전(Offshore Wind Power) 등에 돈을 쏟아붓기보다 이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율적이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경우 가계 에너지 연 평균 지출이 2006년 이후 1355파운드까지 배로 치솟았는데 이는 대부분의 가정이 영원히 난방을 꺼버리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임계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